온 몸으로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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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136회 작성일Date 15-09-11 17:43본문
온 몸으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히 4: 12).살았고 (living) 운동력 (active)이 있다는 것은 듣는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영향은 마음 뿐 아니라 몸에도 나타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있는 음성으로 듣는 사람은 마음의 반응 뿐 아니라 몸의 반응도 일어납니다. 약 이십년 전, 제가 직장을 정리하고 신학 공부를 떠나고자 할 때, 회사 사직을 할 시기를 정하고자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가 추석이 가까울 때 인지라 이왕이면 추석 상여금도 받고 여러 가지 추석 선물도 받고 그만 두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말씀 묵상 중 ‘이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을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 (민 16:26) 이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본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란자 고라 당을 떠나라고 명령하는 내용 이었지만, 저에게는 회사를 떠나는데 아무 것도 받지 말고 떠나라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추석 상여금과 선물들을 받지 않고 떠나는 것은 아쉽기도 하고 어리석어 보이기도 했지만 마음 뿐 아니라 몸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 날 사직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십년이 지난 지난 주일예배에서 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성도들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설교 말씀 중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고 선포했는데, 이 말씀에 실제로 회중 가운데 일어서는 성도들이 몇 있었습니다. 바로 굿윌스토어의 장애직원 형제, 자매들이었습니다. ‘일어나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듣고 일어서는 것이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운 것 같지만, 이런 반응이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습니다. 조금 깊게 들으면 머리로 듣습니다. 더 깊이있게 들으면 마음으로 듣습니다. 그러나 몸으로 듣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들어서 감동도 받고 결심도 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없습니다. 마음으로 몇 번씩 순종해야지 라고 각오는 하지만, 몸으로 실천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머리에서 가슴까지가 가장 멀다는 말이 있지만, 마음에서 몸 까지는 더 먼 거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감동을 지나 변화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음이 증명됩니다. 떠나라 하시면 몸이 떠나야 하고 일어나라 하시면 몸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됩니다. 이것이 말씀이 육신 되는 성육신 (incarnation)의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라 하시고 실제 온 몸으로 사랑 하셨습니다. 용서하라 하시며 몸으로 용서하셨습니다.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도 부활의 몸으로 다시 오리라 믿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몸으로 움직이기를 매일 연습하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제 삶이 말씀이 되고 말씀이 제 몸이 되는 때가 올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순진하고 의심이 없어서 우스꽝스러울 수 있어도 내가 우스워지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우스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지식이 너무 많아지고 신학도 다양해져서 이제는 아무도 어린아이 같이 말씀을 듣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라’ 그래도 관념적으로만 받아들일 뿐 몸으로 일어나는 것은 유치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유치함이 오히려 말씀의 운동력을 경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온 몸으로 말씀을 듣는 모습을 보여준 장애 형제, 자매들이 고맙습니다.
나팔수 강 승 구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히 4: 12).살았고 (living) 운동력 (active)이 있다는 것은 듣는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영향은 마음 뿐 아니라 몸에도 나타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있는 음성으로 듣는 사람은 마음의 반응 뿐 아니라 몸의 반응도 일어납니다. 약 이십년 전, 제가 직장을 정리하고 신학 공부를 떠나고자 할 때, 회사 사직을 할 시기를 정하고자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가 추석이 가까울 때 인지라 이왕이면 추석 상여금도 받고 여러 가지 추석 선물도 받고 그만 두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말씀 묵상 중 ‘이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을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 (민 16:26) 이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본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란자 고라 당을 떠나라고 명령하는 내용 이었지만, 저에게는 회사를 떠나는데 아무 것도 받지 말고 떠나라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추석 상여금과 선물들을 받지 않고 떠나는 것은 아쉽기도 하고 어리석어 보이기도 했지만 마음 뿐 아니라 몸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 날 사직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십년이 지난 지난 주일예배에서 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성도들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설교 말씀 중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고 선포했는데, 이 말씀에 실제로 회중 가운데 일어서는 성도들이 몇 있었습니다. 바로 굿윌스토어의 장애직원 형제, 자매들이었습니다. ‘일어나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듣고 일어서는 것이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운 것 같지만, 이런 반응이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습니다. 조금 깊게 들으면 머리로 듣습니다. 더 깊이있게 들으면 마음으로 듣습니다. 그러나 몸으로 듣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들어서 감동도 받고 결심도 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없습니다. 마음으로 몇 번씩 순종해야지 라고 각오는 하지만, 몸으로 실천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머리에서 가슴까지가 가장 멀다는 말이 있지만, 마음에서 몸 까지는 더 먼 거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감동을 지나 변화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음이 증명됩니다. 떠나라 하시면 몸이 떠나야 하고 일어나라 하시면 몸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됩니다. 이것이 말씀이 육신 되는 성육신 (incarnation)의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라 하시고 실제 온 몸으로 사랑 하셨습니다. 용서하라 하시며 몸으로 용서하셨습니다.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도 부활의 몸으로 다시 오리라 믿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몸으로 움직이기를 매일 연습하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제 삶이 말씀이 되고 말씀이 제 몸이 되는 때가 올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순진하고 의심이 없어서 우스꽝스러울 수 있어도 내가 우스워지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우스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지식이 너무 많아지고 신학도 다양해져서 이제는 아무도 어린아이 같이 말씀을 듣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라’ 그래도 관념적으로만 받아들일 뿐 몸으로 일어나는 것은 유치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유치함이 오히려 말씀의 운동력을 경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온 몸으로 말씀을 듣는 모습을 보여준 장애 형제, 자매들이 고맙습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