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교회

남산교회
로그인
생명의 말씀

목회단상

영화단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072회 작성일Date 15-08-22 12:42

본문

영화 단상
  갑 질하는 재벌 3세에 대한 고발영화가 극장가에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밀린 임금을 받으러 찾아 온 화물차 기사를 회사 사무실에서 폭행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불하는 장면이 나오고, 재벌 회장이 부하 직원을 야구방망이로 후려치는 모습도 영화 속 장면으로 나옵니다. 가진 자들의 갑(甲)질에 대해 대부분의 을(乙)인 관객들은 분노하며 혀를 찹니다. 이 외에도 살인, 폭력, 마약, 폭주, 음란, 도박, 금품 매수, 회유 등 인간이 범할 수 있는 모든 악이 재벌 자식에 의해 저질러집니다. 그런 갑 질 에 맞서 싸우는 형사가 영화의 주인공 입니다. 형사가 갑 질하는 재벌 3세에게 대항할 때마다 관객들은 통쾌한 웃음과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면서 누구나 당해 보았을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갑 질에 대해, 분노를 카타르시스 합니다. 이런 을들의 후련함 때문인지 영화는 훌쩍 천 만 관객에 육박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힘없는 을들의 분노가 관객 수로 표출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많은 을들이 왜 갑 질을 당하며 살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의문의 한 가닥 답이 스쳐 지나가는 듯 했습니다. 형사와 재벌 3세가 격투를 벌이는데, 둘러선 많은 시민들이 모두들 싸움을 구경만 할 뿐, 아무도 형사를 도와 함께 싸우지 않습니다. 남의 싸움에 끼어들기 싫어서인지, 같이 싸울 용기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경찰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인지, 어느 한 사람도 을 편을 들어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갑 은 하나인데 수많은 을 들을 업신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앙에도 갑, 을이 있습니다. 먼저 온 성도와 나중 온 성도, 직분 자와 일반 성도, 목회자와 성도,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모태 신앙인과 불신자 가정에서 자란 성도, 총회장과 평 목사, 대형 교회와 작은 교회, 도시 교회와 시골 교회, 구제하는 성도와 구제받는 성도, 선교하는 교회와 후원받는 선교사 등,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생활 속에도 많은 갑과 을의 관계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야고보 3:1) 예수님은 항상 을 편에 서셨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약한 을이 아니라 가장 강한 갑 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힘과 권력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갑의 힘으로 을을 도우셨습니다. 이것이 갑과 을의 관계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갑이 을의 편에 서고 을이 갑을 존경할 때, 의와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을을 무시하는 갑만 있으면 폭군 사회가 될 것이고 갑을 존경하지 않는 을 만 있으면 실패한 공산주의가 될 것 입니다. 모두가 갑이 아니듯이, 모두가 을도 아닙니다. 을을 위한 갑과, 갑을 존경하는 을이 있어야 노블리스 오블리제 (noblesse, oblige)의 사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부와 고아, 나그네를 위해 곡식 낱알을 거두지 말고 남겨 두라고 하십니다. 갑의 사회적 책임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런 갑에 대해 을은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읽는 교회에서 먼저 책임지는 갑과 존경하는 을이 생겨난다면 영화 속 같은 장면은 더 이상 뉴스에 보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갑과 을의 존재가 나쁜 것이 아니라 무책임한 갑 질과 그 갑 질을 막지 않는 을의 방관이 나쁜 것입니다. 영화 한 편 보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만큼 우리 사회는 갑과 을의 관계가 점점 더 심각해지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교회가 올바른 갑, 을의 관계를 보여주는 모델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