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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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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069회 작성일Date 16-01-3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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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단상  저는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무섭고 위엄 있는 어른으로만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북에서 가족들을 이끌고 월남하셔서 오남매를 양육하시고 가정을 남한에 정착시키셨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의 결단성을 배워야 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1945년 해방 후 모두들 북한에 남아 있으려 할 때,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하기로 결정하시고 1947년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어머니와 할머니까지 모시고 삼팔선을 넘으신 그 결단성 때문에 우리가 남한에서 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을 기회도 없이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생 때 돌아가셨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고비를 넘길 때마다 아버지의 신앙과 결단성을 기억하려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 걸고 삼팔선을 넘어 오셨는데 나도 지금 결단해야 하지 않을까 하며 결정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들이 이제 아버지의 나이보다 더 오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버지가 떠오른 곳이 병원에서였습니다. 신장 기능을 검사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에 와서 혈액을 채취하는데 갑자기 왜 매 달 이렇게 간호사에게 팔을 내밀고 피를 뽑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은 아버지 때문이라는 원망과 한탄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의 신장의 문제는 유전으로 내려오는 선천적이라고 의사들이 진단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러셨고 형들이 그럴 것이라고 했습니다. 큰 형님도 신장이 좋지 않아 노년에 고생을 하시다가 돌아가신 것을 보면 우리 형제들이 모두 신장이 건강하지 못한 원인이 아버지로 부터 온 것임이 분명합니다. 아버지는 그 사실 조차도 모르시고 일찍 돌아가셨지만 그 후손들은 계속 건강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왜 이런 것을 우리에게 물려주셔서 형들과 내가 이렇게 항상 건강의 위협을 받고 살게 하셨나? 하는 생각이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상하게 아버지와 더 가깝고 친밀하게 느껴지는 야릇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가장으로써 부인과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월남하셔서 생소한 남한 땅에서 가족을 지키고 집안을 일으키며 살았을 아버지의 숭고한 희생을, 나누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 때문에 자식들에게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던 우리 아버지 시대의 모든 아버지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가장의 동물적 본능, 삼팔따라지라고 조롱받으며 남한 땅에서 살아오신 이북 남자들의 시대적 아픔들, 아버지의 이 모든 고난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 자식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버지는 안계시지만 아버지의 피가 내 몸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질환으로 실감한다는 것이 아이러니였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내 안에 남아 계시는 것과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내 몸의 한 부분에 남아 계시는 것은 아버지의 고통에 내가 조금이나마 동참하고 있음입니다. 아버지 때문에 아픈 것이 아버지를 느낄 수 있는 공감대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조각 난 추억들이 제 몸의 약한 부분으로 인해 잊혀지지 않고 계속 아버지를 추억하게 했습니다.  신앙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내가 인생의 고난의 자리에서 조금이나마 느낄 때, 나는 예수님과 더욱 가까워집니다. 예수님이 나의 인생의 한 부분이 되어 계시듯 나의 고통은 그 분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합니다. 아버지는 유전적 약함 뿐 아니라 신앙의 결단도 남겨 주셨습니다. 이제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나 한탄보다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유전적 질환마저 물려받은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