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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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118회 작성일Date 15-11-07 09:57본문
사라진 연인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진해 남원로터리를 산책했습니다. 경찰서, 우체국, 상업은행, 흑백 다방, 만두집들이 팔각 도로를 둘러싸고 있던 곳입니다. 결혼 전 아내와 함께 만나고 걸었던 거리입니다. 길은 옛 길인데 주변의 건물들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경찰서 건물은 사라지고 작은 공터가 되었습니다. 우체국은 역사관으로 보존되어 있었고 상업은행은 우리은행으로 바뀌었습니다. 흑백 다방은 현대식의 카페로 바뀌었고 만두집 있던 자리는 25시편의점으로 바뀌었습니다. 변해 버린 거리의 모습에서 갑자기 그 곳에 남아 있던 추억마저 사라진 것 같아 당황했습니다. 추억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나의 과거가 없어진 것같이 허무했습니다. 나는 사라진 추억 속에서 그 때의 연인이었던 미스 김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그 때를 회상하며 ‘우리 흑백 다방에서 자주 만났었지?’ ‘우리 저 만두집에서 만두 먹고 그랬잖아?’ ‘당신 기억 나? 저기 국밥 집’ 하면서 예전의 기억들을 더듬었습니다. 저는 만두집을 찾는 것이 아니라 추억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추억을 찾지 않고 다만 만두집만 찾는 듯, 그 때가 언제인데 지금까지 만두집이 있겠냐고 되물었습니다. 아내의 대답을 들으면서 나는 추억의 거리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추억의 연인마저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한탄이 흘러 나왔습니다. 과연 시간은 거리의 모습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마저도 바꾸는 것인지… 머물고 싶은 시간들, 보내고 싶지 않은 추억들이 사라져 갔습니다. 거리는 그대로 있건만 추억의 장소가 사라진 것 같이, 아내는 분명 내 옆에 있건만 그 때의 미스 김은 사라졌습니다. 아내와 나란히 걸으면서도 나는 사라진 연인을 찾고 있었습니다. 문득 어느 책에서 보았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습니다.’ 미스 김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아내의 속에 있습니다. 나는 다만 아내 속의 미스 김을 보지 못하는 것 뿐 입니다. 보이는 아내만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 연인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때의 그 연인은 지금의 아내 속에서 나와 함께 걷고 있습니다. 아내가 바로 그 연인인 미스 김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 이래서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인간 예수님은 사라지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만 남아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몸 찢기시고 십자가 지신 예수님은 사라지고 영적인 세계의 성령님만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 예수를 보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 분의 체취와 호흡을 느끼고 싶습니다. 인간은 인간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인간 예수는 더 이상 이곳에 있지 않습니다. 마치 그 거리에 연인 미스 김이 더 이상 있지 않은 것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이 땅의 예수님이 남아 있고, 성령님 안에 인간 예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 분의 기록인 성경 속에 예수님의 체취와 움직임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성령 안에 계십니다. 마치 미스 김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네 아내 속에 남아 있듯이 말입니다. 따라서 시간도 추억을 삼킬 수는 없습니다. 다만 추억을 머금은 현실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신앙이 영적인 세계를 머금고 현실로 서 있는 것 같이 말입니다.
나팔수 강 승 구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진해 남원로터리를 산책했습니다. 경찰서, 우체국, 상업은행, 흑백 다방, 만두집들이 팔각 도로를 둘러싸고 있던 곳입니다. 결혼 전 아내와 함께 만나고 걸었던 거리입니다. 길은 옛 길인데 주변의 건물들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경찰서 건물은 사라지고 작은 공터가 되었습니다. 우체국은 역사관으로 보존되어 있었고 상업은행은 우리은행으로 바뀌었습니다. 흑백 다방은 현대식의 카페로 바뀌었고 만두집 있던 자리는 25시편의점으로 바뀌었습니다. 변해 버린 거리의 모습에서 갑자기 그 곳에 남아 있던 추억마저 사라진 것 같아 당황했습니다. 추억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나의 과거가 없어진 것같이 허무했습니다. 나는 사라진 추억 속에서 그 때의 연인이었던 미스 김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그 때를 회상하며 ‘우리 흑백 다방에서 자주 만났었지?’ ‘우리 저 만두집에서 만두 먹고 그랬잖아?’ ‘당신 기억 나? 저기 국밥 집’ 하면서 예전의 기억들을 더듬었습니다. 저는 만두집을 찾는 것이 아니라 추억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추억을 찾지 않고 다만 만두집만 찾는 듯, 그 때가 언제인데 지금까지 만두집이 있겠냐고 되물었습니다. 아내의 대답을 들으면서 나는 추억의 거리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추억의 연인마저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한탄이 흘러 나왔습니다. 과연 시간은 거리의 모습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마저도 바꾸는 것인지… 머물고 싶은 시간들, 보내고 싶지 않은 추억들이 사라져 갔습니다. 거리는 그대로 있건만 추억의 장소가 사라진 것 같이, 아내는 분명 내 옆에 있건만 그 때의 미스 김은 사라졌습니다. 아내와 나란히 걸으면서도 나는 사라진 연인을 찾고 있었습니다. 문득 어느 책에서 보았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습니다.’ 미스 김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아내의 속에 있습니다. 나는 다만 아내 속의 미스 김을 보지 못하는 것 뿐 입니다. 보이는 아내만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 연인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때의 그 연인은 지금의 아내 속에서 나와 함께 걷고 있습니다. 아내가 바로 그 연인인 미스 김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 이래서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인간 예수님은 사라지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만 남아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몸 찢기시고 십자가 지신 예수님은 사라지고 영적인 세계의 성령님만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 예수를 보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 분의 체취와 호흡을 느끼고 싶습니다. 인간은 인간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인간 예수는 더 이상 이곳에 있지 않습니다. 마치 그 거리에 연인 미스 김이 더 이상 있지 않은 것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이 땅의 예수님이 남아 있고, 성령님 안에 인간 예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 분의 기록인 성경 속에 예수님의 체취와 움직임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성령 안에 계십니다. 마치 미스 김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네 아내 속에 남아 있듯이 말입니다. 따라서 시간도 추억을 삼킬 수는 없습니다. 다만 추억을 머금은 현실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신앙이 영적인 세계를 머금고 현실로 서 있는 것 같이 말입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