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달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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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130회 작성일Date 15-10-03 10:06본문
추석 달 단상
일 년 중 달이 가장 크고 밝은 추석입니다. 추석이 되면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약 3년 전, 캐나다 밴프에서 추석을 맞이했습니다. 밴프는 록키 산맥에 둘러싸인 작은 도시 입니다. 위도가 우리나라보다 약 15도 북쪽으로 높은 지역인지라 가을인데도 겨울 같이 눈이 오고 아침에 해가 늦게 뜹니다. 추석 날 아침 숙소를 나서는데 어두운 하늘에서 갑자기 달이 지구를 덮을 듯이 크고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깜짝 놀라서 한참을 쳐다보았는데, 이제까지 달을 그토록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크게 보이든지 마치 동화에 나오는 방아 찧는 토끼까지도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 보다 조금 북쪽에서 보는 달인데도 이렇게 차이가 있구나 하는 점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크고 밝은 달을 보면서 신앙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도 어느 위치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 안에서 하나님을 보면 가깝고 분명하게 보이지만 내 생각과 내 상황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작고 희미하게 보입니다. 마치 똑 같은 달인데도 캐나다와 우리나라에서 보는 달의 차이와 같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나타내 주시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크고 분명하게 보려면 성경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성경 안에서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을 손으로 붙잡을 수 있듯이 가까이 만날 수 있습니다. 요한 사도는 이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고 했습니다. (요일 1:1)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나타나셔서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손으로 만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성경에 남겨 우리가 성경 안으로 들어가면 지금도 요한 사도와 같이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손으로 만진 바’ 가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완전히 나타내시는 분이고, 성경은 그 예수님을 담고 있는 유일한 책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자리는 성경 안에서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또 다시 추석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캐나다에서 보았던 그 달의 모습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너무나 가까워서 손을 뻗으면 잡힐듯하던 그 달의 모습이 마치 나를 가까이에서 내려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얼굴과 같이 여겨집니다. 그 모습은 두려움이 아니라 따뜻함이고 친근함이었습니다. 작게 이야기해도 너무 가까워서 잘 들리 실 것 같은 그런 거리였습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가깝고 친밀하게 느끼며 산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추석 날 뿐 아니라 항상 하나님을 그렇게 가까이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너무 밝고 크셔서 나의 모든 것을 다 내려다보시고 계셔서 작은 것 하나까지도 감출 수 없는 투명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 날의 그 기억이 저를 비추고 감싸는 하나님의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해의 눈부신 밝음보다 달의 은은한 빛으로 저에게 다가 오시는가 봅니다. 이것 또한 밝은 빛 앞에 설 수 없는 죄인 된 우리를 향한 그 분의 배려가 아닐는지요? 이번 추석에도 밤하늘의 달을 보며 은은한 그 빛을 느껴보기 원합니다.
나팔수 강 승 구
일 년 중 달이 가장 크고 밝은 추석입니다. 추석이 되면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약 3년 전, 캐나다 밴프에서 추석을 맞이했습니다. 밴프는 록키 산맥에 둘러싸인 작은 도시 입니다. 위도가 우리나라보다 약 15도 북쪽으로 높은 지역인지라 가을인데도 겨울 같이 눈이 오고 아침에 해가 늦게 뜹니다. 추석 날 아침 숙소를 나서는데 어두운 하늘에서 갑자기 달이 지구를 덮을 듯이 크고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깜짝 놀라서 한참을 쳐다보았는데, 이제까지 달을 그토록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크게 보이든지 마치 동화에 나오는 방아 찧는 토끼까지도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 보다 조금 북쪽에서 보는 달인데도 이렇게 차이가 있구나 하는 점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크고 밝은 달을 보면서 신앙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도 어느 위치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 안에서 하나님을 보면 가깝고 분명하게 보이지만 내 생각과 내 상황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작고 희미하게 보입니다. 마치 똑 같은 달인데도 캐나다와 우리나라에서 보는 달의 차이와 같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나타내 주시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크고 분명하게 보려면 성경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성경 안에서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을 손으로 붙잡을 수 있듯이 가까이 만날 수 있습니다. 요한 사도는 이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고 했습니다. (요일 1:1)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나타나셔서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손으로 만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성경에 남겨 우리가 성경 안으로 들어가면 지금도 요한 사도와 같이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손으로 만진 바’ 가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완전히 나타내시는 분이고, 성경은 그 예수님을 담고 있는 유일한 책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자리는 성경 안에서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또 다시 추석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캐나다에서 보았던 그 달의 모습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너무나 가까워서 손을 뻗으면 잡힐듯하던 그 달의 모습이 마치 나를 가까이에서 내려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얼굴과 같이 여겨집니다. 그 모습은 두려움이 아니라 따뜻함이고 친근함이었습니다. 작게 이야기해도 너무 가까워서 잘 들리 실 것 같은 그런 거리였습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가깝고 친밀하게 느끼며 산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추석 날 뿐 아니라 항상 하나님을 그렇게 가까이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너무 밝고 크셔서 나의 모든 것을 다 내려다보시고 계셔서 작은 것 하나까지도 감출 수 없는 투명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 날의 그 기억이 저를 비추고 감싸는 하나님의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해의 눈부신 밝음보다 달의 은은한 빛으로 저에게 다가 오시는가 봅니다. 이것 또한 밝은 빛 앞에 설 수 없는 죄인 된 우리를 향한 그 분의 배려가 아닐는지요? 이번 추석에도 밤하늘의 달을 보며 은은한 그 빛을 느껴보기 원합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