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장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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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122회 작성일Date 16-03-26 11:03본문
게장 맛
‘어디 가서 게장을 사지?’ 저녁 식사를 하다가 아내가 불쑥 혼잣말을 했습니다. 저나 아내나 게장 같이 짠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데 왜 갑자기 게장을 찾는지 궁금해서 누가 먹으려고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오늘 노인 요양병원에 계시는 장모님께 다녀왔는데 장모님이 게장을 사다 달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같은 방에 계시는 할머니 가족이 게장을 가져 와서 조금 얻어 먹었는데 너무 맛이 있어서 오랜만에 밥 한 그릇을 다 드셨다고 했습니다. 하기야 옛날부터 게장은 밥도둑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밥맛을 돋우는 음식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 요양 병원에서 주는 식사를 하시다가 가족들이 가져 온 게장으로 식사를 하셨으니 과연 별미였을 것입니다. 다음 날 아내는 여기 저기 게장 파는 식당을 찾아서 포장 주문으로 게장을 장모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옆의 할머니께 조금 얻어 잡수시던 장모님께 게장 한 그릇을 듬뿍 가져다 드렸으니 장모님이 얼마나 좋아 하셨을까 요즈음 말로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그러나 장모님께 다녀온 아내의 대답은 반대였습니다. 장모님은 아내가 사 가지고 간 게장을 맛보시더니 며칠 전에 먹던 그 맛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별로 반가워하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멀리 까지 식당을 찾아가서 포장 주문까지 해서 가져간 게장을 반겨 하지 않으시는 장모님의 반응에 아내는 실망이 되었습니다. 같은 게장인데 왜 맛이 다르다고 할까? 아내는 또 혼잣말을 했습니다. 아내의 혼잣말에 ‘다음에는 게장을 한 그릇 다 가지고 가지 말고 조금씩 나눠서 갖다 드려라’ 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웃으면서 ‘맞아요, 많으면 귀 한 것을 모르지’ 하고 말했습니다. 장모님이 옆의 할머니한테 얻어 잡수시던 게장은 다리 한 조각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 작은 다리 한 조각으로 밥맛을 돋우던 게장이 이제는 두, 세 마리의 큰 게가 모두 다 장모님 몫으로 놓여
있으니 게장이 밥맛을 돋우는 별미가 아니라 게장만 봐도 배가 부른 주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별미란 조금 먹을 때 특별한 맛을 내는 것이지 매일 끼니 때 마다 먹으면 더 이상 별미가 될 수 없습니다. 저의 조언은 적중해서 그 다음에 아내가 게장을 조금씩 가져갔더니 똑같은 식당의 게장인데 장모님은 맛있다고 아까워하면서 밥 한 그릇을 다 비우셨다고 했습니다. 장모님의 게장 맛을 생각하며 신앙의 맛이 그런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다와 같이 넓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 같이 높고 큽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강 같이 흐르고 긍휼하심은 폭포 같이 넘칩니다. 하나님의 인내는 영원과 같이 오래고 용서는 무한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크고 넓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너무 자주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고, 사람이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 듯,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너무 크고 넓기 때문에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어진다고 생각 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진다고 생각 할 때, 한 줄기 빛 과 같이 비치는 작은 하나님의 손길은 큰 감격과 감사로 느껴집니다. 숨 만 쉬면 마실 수 있는 공기가 산소 호흡기를 통해서만 마실 수 있게 될 때, 공기의 고마움을 알 듯, 가끔씩은 하나님의 부재(不在)를 경험하는 고난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 여정 중에 고난이라는 은혜의 여백을 남겨 두시는가 싶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의 자리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더 귀하게 여겨진다면 고난은 역시 ‘위장된 축복’ 이라는 어느 책의 제목이 맞는 것 같습니다. 부족한 게장이 게장 맛을 발휘 하듯이 십자가의 고난이 있으므로 부활의 새벽은 더욱 찬란히 빛납니다.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고난주간을 통과케 하신 주님께 영광을!! 나팔수 강 승 구
‘어디 가서 게장을 사지?’ 저녁 식사를 하다가 아내가 불쑥 혼잣말을 했습니다. 저나 아내나 게장 같이 짠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데 왜 갑자기 게장을 찾는지 궁금해서 누가 먹으려고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오늘 노인 요양병원에 계시는 장모님께 다녀왔는데 장모님이 게장을 사다 달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같은 방에 계시는 할머니 가족이 게장을 가져 와서 조금 얻어 먹었는데 너무 맛이 있어서 오랜만에 밥 한 그릇을 다 드셨다고 했습니다. 하기야 옛날부터 게장은 밥도둑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밥맛을 돋우는 음식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 요양 병원에서 주는 식사를 하시다가 가족들이 가져 온 게장으로 식사를 하셨으니 과연 별미였을 것입니다. 다음 날 아내는 여기 저기 게장 파는 식당을 찾아서 포장 주문으로 게장을 장모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옆의 할머니께 조금 얻어 잡수시던 장모님께 게장 한 그릇을 듬뿍 가져다 드렸으니 장모님이 얼마나 좋아 하셨을까 요즈음 말로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그러나 장모님께 다녀온 아내의 대답은 반대였습니다. 장모님은 아내가 사 가지고 간 게장을 맛보시더니 며칠 전에 먹던 그 맛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별로 반가워하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멀리 까지 식당을 찾아가서 포장 주문까지 해서 가져간 게장을 반겨 하지 않으시는 장모님의 반응에 아내는 실망이 되었습니다. 같은 게장인데 왜 맛이 다르다고 할까? 아내는 또 혼잣말을 했습니다. 아내의 혼잣말에 ‘다음에는 게장을 한 그릇 다 가지고 가지 말고 조금씩 나눠서 갖다 드려라’ 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웃으면서 ‘맞아요, 많으면 귀 한 것을 모르지’ 하고 말했습니다. 장모님이 옆의 할머니한테 얻어 잡수시던 게장은 다리 한 조각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 작은 다리 한 조각으로 밥맛을 돋우던 게장이 이제는 두, 세 마리의 큰 게가 모두 다 장모님 몫으로 놓여
있으니 게장이 밥맛을 돋우는 별미가 아니라 게장만 봐도 배가 부른 주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별미란 조금 먹을 때 특별한 맛을 내는 것이지 매일 끼니 때 마다 먹으면 더 이상 별미가 될 수 없습니다. 저의 조언은 적중해서 그 다음에 아내가 게장을 조금씩 가져갔더니 똑같은 식당의 게장인데 장모님은 맛있다고 아까워하면서 밥 한 그릇을 다 비우셨다고 했습니다. 장모님의 게장 맛을 생각하며 신앙의 맛이 그런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다와 같이 넓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 같이 높고 큽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강 같이 흐르고 긍휼하심은 폭포 같이 넘칩니다. 하나님의 인내는 영원과 같이 오래고 용서는 무한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크고 넓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너무 자주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고, 사람이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 듯,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너무 크고 넓기 때문에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어진다고 생각 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진다고 생각 할 때, 한 줄기 빛 과 같이 비치는 작은 하나님의 손길은 큰 감격과 감사로 느껴집니다. 숨 만 쉬면 마실 수 있는 공기가 산소 호흡기를 통해서만 마실 수 있게 될 때, 공기의 고마움을 알 듯, 가끔씩은 하나님의 부재(不在)를 경험하는 고난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 여정 중에 고난이라는 은혜의 여백을 남겨 두시는가 싶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의 자리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더 귀하게 여겨진다면 고난은 역시 ‘위장된 축복’ 이라는 어느 책의 제목이 맞는 것 같습니다. 부족한 게장이 게장 맛을 발휘 하듯이 십자가의 고난이 있으므로 부활의 새벽은 더욱 찬란히 빛납니다.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고난주간을 통과케 하신 주님께 영광을!!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