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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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107회 작성일Date 16-01-16 09:56본문
나는 누구인가?
어린 시절 사람들은 나를 강 장로님 막내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서울 영락 교회 장로 셨기 때문 입니다. 성장해서 사회인이 되었을 때에는 직장의 지위에 따라 나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졌습니다. 신입사원 강 기사에서 강 과장으로, 나중에는 강 부장으로 불리었습니다. 교회에서도 강 형제라는 이름에서 권사 안수를 받은 후에는 강 권사로 바뀌었고 이제는 강 목사로 불러지고 있습니다. 나는 동일한 나인데 나의 직분과 상황에 따라 나는 달라졌습니다. 내가 누구인가는 내 스스로가 만들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 집니다. 그러다 보니 진짜 나는 없어지고 사람들이 불러주는 나 만 남아 있는 듯합니다. 심지어는 내 자신마저도 실상의 나는 잊어버린 채 사람들이 불러 주는 나로 살아 갈 때가 많습니다. 나는 어쩌면 상황과 사람들에 의해 강요된 나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렇듯 타인에 의한 나로 살아가다 보니 내 자신도 내가 정말 누구인지를 모른 체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이 나를 불러 주는 모든 호칭과 평가를 벗어 버리고 벌거벗은 채로의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해 며칠 전 아침 말씀 묵상 중 그 답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눅3: 23)
동네 사람들이 아는 예수님은 목수 요셉의 아들 입니다. 나사렛 작은 동네에서 평생을 목수로 살던 요셉의 아들로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헬리의 손자이고 맛닷의 증손자이고 레위의 고손이고 멜기의 5대 손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이상의 예수님은 모릅니다.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까지 압니다. 이것이 그 당시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전부였습니다.
목수의 아들, 대를 이어 목수로 사는 나사렛 예수, 갈릴리 어촌의 어부들을 이끄는 우두머리, 율법 학자들에게 저항하다 그들의 기득권에 밀려 죽은 예수, 로마의 사형틀인 십자가에서 고통 받으며 죽은 예수,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의 상황과 처해진 환경에 따라 예수님은 알려졌고 또 불리워졌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겉모습을 보고 그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이 걸치고 있던 모든 옷들을 다 벗었을 때, 그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예수가 아니었음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하나님 이셨습니다. 그가 인생이라는 겉옷을 벗었을 때, 그는 완전히 다른 예수님임을 드러냈습니다.
성경이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주듯이, 성경은 내가 누구인지도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성경이 말하는 나는 강 장로의 아들도 아니고 회사의 강 부장도 아닙니다. 목사나 권사라는 직분도 성경이 말하는 나는 아닙니다. 성경은 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요1:12) 그것도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엡1:4) 사람들이 보기에는 겉모습의 나를 부르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겉옷들을 다 벗은 나를 보십니다. 태초에 아담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던 아담과 같이 나를 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런 나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설 때 마다 항상 겉옷을 벗기십니다. 실상의 나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이란 매일 겉옷을 벗는 연습 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육체까지 벗는 날 성경이 말하는 내가 완전히 들어날 것입니다. 그 날이 우리의 소망의 날 일 것입니다.
나팔수 강 승 구
어린 시절 사람들은 나를 강 장로님 막내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서울 영락 교회 장로 셨기 때문 입니다. 성장해서 사회인이 되었을 때에는 직장의 지위에 따라 나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졌습니다. 신입사원 강 기사에서 강 과장으로, 나중에는 강 부장으로 불리었습니다. 교회에서도 강 형제라는 이름에서 권사 안수를 받은 후에는 강 권사로 바뀌었고 이제는 강 목사로 불러지고 있습니다. 나는 동일한 나인데 나의 직분과 상황에 따라 나는 달라졌습니다. 내가 누구인가는 내 스스로가 만들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 집니다. 그러다 보니 진짜 나는 없어지고 사람들이 불러주는 나 만 남아 있는 듯합니다. 심지어는 내 자신마저도 실상의 나는 잊어버린 채 사람들이 불러 주는 나로 살아 갈 때가 많습니다. 나는 어쩌면 상황과 사람들에 의해 강요된 나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렇듯 타인에 의한 나로 살아가다 보니 내 자신도 내가 정말 누구인지를 모른 체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이 나를 불러 주는 모든 호칭과 평가를 벗어 버리고 벌거벗은 채로의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해 며칠 전 아침 말씀 묵상 중 그 답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눅3: 23)
동네 사람들이 아는 예수님은 목수 요셉의 아들 입니다. 나사렛 작은 동네에서 평생을 목수로 살던 요셉의 아들로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헬리의 손자이고 맛닷의 증손자이고 레위의 고손이고 멜기의 5대 손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이상의 예수님은 모릅니다.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까지 압니다. 이것이 그 당시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전부였습니다.
목수의 아들, 대를 이어 목수로 사는 나사렛 예수, 갈릴리 어촌의 어부들을 이끄는 우두머리, 율법 학자들에게 저항하다 그들의 기득권에 밀려 죽은 예수, 로마의 사형틀인 십자가에서 고통 받으며 죽은 예수,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의 상황과 처해진 환경에 따라 예수님은 알려졌고 또 불리워졌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겉모습을 보고 그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이 걸치고 있던 모든 옷들을 다 벗었을 때, 그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예수가 아니었음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하나님 이셨습니다. 그가 인생이라는 겉옷을 벗었을 때, 그는 완전히 다른 예수님임을 드러냈습니다.
성경이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주듯이, 성경은 내가 누구인지도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성경이 말하는 나는 강 장로의 아들도 아니고 회사의 강 부장도 아닙니다. 목사나 권사라는 직분도 성경이 말하는 나는 아닙니다. 성경은 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요1:12) 그것도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엡1:4) 사람들이 보기에는 겉모습의 나를 부르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겉옷들을 다 벗은 나를 보십니다. 태초에 아담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던 아담과 같이 나를 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런 나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설 때 마다 항상 겉옷을 벗기십니다. 실상의 나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이란 매일 겉옷을 벗는 연습 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육체까지 벗는 날 성경이 말하는 내가 완전히 들어날 것입니다. 그 날이 우리의 소망의 날 일 것입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