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세와 내세에 받는 복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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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915회 작성일Date 25-07-12 16:08본문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두 가지 전도용 구호가 있었습니다.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 그리고 “예수 믿고 천당 가세요”라는 두 문장입니다.
이 두 구호 속에는 우리가 꿈꾸는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현세에서도 복을 누리고, 또 내세에서도 영원토록 복을 누리는 가장 이상적인 소망이 결합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어떤 책임과 의무도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할 수 있는 최고의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 두 구호들이 이제는 세상 속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교회 안에서마저도 시들해진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세상 속에서는 교인들이 살아가는 삶과 하는 행동들이 복 다운 느낌이 들지 않고, 천국스럽지도 않아 예수님 말씀처럼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인 상태로 전락한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그나마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다 보니 이제는 정신 차리고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겠다는 각성으로 기복신앙도,
사후천국도 아닌 이 땅의 거룩한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추며 이 두 구호가 힘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이 두 구호는 아주 잘 짜여진 조합으로 예수님께서도 적극 인정하신 바 있기에 교회 안팎에서 공히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합니다.
물론 이 두 구호 사이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그 자리를 든든히 차지할 때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예수님께 삶의 절박한 질문을 가지고 온 사람의 이야기가 시발점이 됩니다.
그 사람은 이 땅에서 복을 듬뿍 누리며 부족함 없이 사는 부유한 사람으로 예수님께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냐고 물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막 10:21)였습니다.
바로 현재의 복인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와 내세의 복인 “예수 믿고 천당 가세요” 사이에 너무도 엄청난 것이 끼어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그 틈을 결코 메우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제자들의 대표로 말하기를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막 10:28)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는다고 하십니다.
이는 주 예수를 믿음으로 혈육의 연결고리가 끊어질지라도 백배 이상이나 되는 천국가족 공동체를 통해 누리는 격려, 위로, 나눔과 보살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막 10:29-30).
이 두 가지는 분명 예전의 전도 구호와 일치합니다.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가 현세의 백 배의 복이 되고, “예수 믿고 천당 가세요”는 내세의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분명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어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동일한 구호가 세상 속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결코 빛 바라지 않을 수 있는 길은
그 사이에 있는 “박해를 겸하여 받고”로 인함입니다. 박해는 세상을 따르지 않는 삶이니
그럼 현세와 내세 사이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제자도 만이 그 틈을 메울 수 있는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
이 두 구호 속에는 우리가 꿈꾸는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현세에서도 복을 누리고, 또 내세에서도 영원토록 복을 누리는 가장 이상적인 소망이 결합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어떤 책임과 의무도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할 수 있는 최고의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 두 구호들이 이제는 세상 속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교회 안에서마저도 시들해진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세상 속에서는 교인들이 살아가는 삶과 하는 행동들이 복 다운 느낌이 들지 않고, 천국스럽지도 않아 예수님 말씀처럼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인 상태로 전락한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그나마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다 보니 이제는 정신 차리고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겠다는 각성으로 기복신앙도,
사후천국도 아닌 이 땅의 거룩한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추며 이 두 구호가 힘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이 두 구호는 아주 잘 짜여진 조합으로 예수님께서도 적극 인정하신 바 있기에 교회 안팎에서 공히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합니다.
물론 이 두 구호 사이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그 자리를 든든히 차지할 때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예수님께 삶의 절박한 질문을 가지고 온 사람의 이야기가 시발점이 됩니다.
그 사람은 이 땅에서 복을 듬뿍 누리며 부족함 없이 사는 부유한 사람으로 예수님께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냐고 물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막 10:21)였습니다.
바로 현재의 복인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와 내세의 복인 “예수 믿고 천당 가세요” 사이에 너무도 엄청난 것이 끼어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그 틈을 결코 메우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제자들의 대표로 말하기를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막 10:28)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는다고 하십니다.
이는 주 예수를 믿음으로 혈육의 연결고리가 끊어질지라도 백배 이상이나 되는 천국가족 공동체를 통해 누리는 격려, 위로, 나눔과 보살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막 10:29-30).
이 두 가지는 분명 예전의 전도 구호와 일치합니다.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가 현세의 백 배의 복이 되고, “예수 믿고 천당 가세요”는 내세의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분명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어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동일한 구호가 세상 속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결코 빛 바라지 않을 수 있는 길은
그 사이에 있는 “박해를 겸하여 받고”로 인함입니다. 박해는 세상을 따르지 않는 삶이니
그럼 현세와 내세 사이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제자도 만이 그 틈을 메울 수 있는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