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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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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3회 작성일Date 25-01-1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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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로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생각해 봅니다.
누가라는 제자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쓰면서 예수님의 삶과 제자들의 삶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한 가지 낱말을 사용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날마다’라는 용어입니다. 신약성경 속에서 19번 나타나는 표현으로 누가복음에 5번, 사도행전에 8번 사용되며
누가-행전에 13번이나 등장한다는 점에서 누가가 전하는 제자도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며, 매일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복음서 저자들 중에 누가만이 예수님이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다(눅 22:39)라고 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시던 삶은 제자들에게도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함이 분명합니다.

  누가복음에서 ‘날마다’가 처음 나타나는 곳은 의미심장하게도 제자도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2).
병행구절을 가지고 있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날마다’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고, 마가복음에는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고 하며, 누가복음에는 무리에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무리에서 제자로의 전환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분명합니다.
무리에서 제자로의 변화는 다른 것에 있지 않고 주님 가신 자기부인과 자기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느냐, 아니냐에 있으며
그것이 날마다로 변해가고 있는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길이 가능할까요?

  우리가 이렇게 십자가의 거룩한 길을 걷도록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눅 11:3)라는 기도를 하게하셔서
필요한 모든 것을 날마다 공급해 주시는 주의 성실하심이 그것을 가능케 합니다.
그리고 늘 멈추지 않으시고 진리로 ‘날마다 가르치심’으로 가능해집니다(눅 19:47).
이렇게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날마다’가 우리가 응답하는 ‘날마다’와 만날 때 우리는 매일 매일 주의 형상을 닮아가는 축복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길도 있다는 경고를 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날마다 갖은 좋은 것들로 채워주시고, 지켜주시며, 가르쳐 주셨는데
한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기만 합니다(눅 16:19).
그 부자의 대문 앞에는 거반 죽어가는 거지 나사로가 헌데 투성이로 버려져 있습니다.
이 부자가 가고 있는 길은 자기부인과 자기 십자가가 아니라, 자기증명과 자기영광을 날마다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부자가 곧 무리 중에서도 상(上)무리이며, 거지 중에서도 상(上)거지인 것입니다.
부자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부를 날마다 바르게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도는 ‘날마다’ 다른 세상을 가능케 합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