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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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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313회 작성일Date 24-07-1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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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휴일에 시간을 내어 집에서 아내와 함께 조금 지나간 영화지만 천만 관객을 넘긴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내용의 흐름이야 이미 그 시대를 살아왔으니 보지 않아도 잘 알고 있지요.
쿠데타를 일으킨 반란군들이 결국 진압군들을 이기고 반란에 성공한다는 것이니 더 부연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혁명군이 아니라, 반란군이라는 명칭, 저항군이 아니라 진압군이라는 명칭이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 자막으로 주어진 글귀였습니다.
“마침내 신군부는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삼켰다. 찬란했던 서울의 봄은 그렇게 끝났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끝말은 곧 살을 에는 듯한 겨울을 견디며 따스한 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건만
결국 그 봄은 오지 않았다는 의미로 다가오며, 희망이 절망이 되었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봄’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또 하나의 역사 이야기가 불현듯 생각났습니다.
1933-1934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이라는 장편소설입니다.
조선시대 말 흥선 이하응이 세도가들의 음모 속에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동네에서 술꾼으로 투전판을 전전하며 행패를 일삼는 부랑자 행세를 하며 살아가다
마침내 둘째 아들을 왕위에 올리며 흥선대원군으로 섭정의 자리에 앉는다는 내용입니다.
그의 거처인 운현궁은 이렇게 권력의 중심이 되었고, 『운현궁의 봄』이라는 제목은 흥선의 집안이 모질고,
혹독한 겨울을 지내고 드디어 봄을 맞이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의 끝말인 “운현궁은 정치의 중심지이며 따라서 이 나라의 중심지로 되었다.…
옛날 흥선이 관직을 내어던진 이래 오랫동안 쓸쓸하기 짝이 없던 이 집에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는 말이 흡사 희망처럼 다가옵니다.

    이렇게 한쪽에서는 시작되려던 봄이 “그렇게 끝났다”는 자막으로 결론에 이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는 것으로 그 막을 내립니다.
나라도 집안도 이렇게 따스한 봄날, 생명이 살아나는 봄날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는
예수님의 선언은 이미 2000여 년 전에 그 영원한 봄날이 이 땅에 확실하게 임했다는 것을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운현궁의 봄인 흥선대원군의 시절에 그 영원한 봄날이 선교사들을 통해 조선에도 임했고,
서울의 봄을 기대했던 쿠데타가 있었던 그 때도 그 영원한 봄날은 계속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봄을 기대하고 있었을까요?

    흥선대원군 시절 성령의 역사에 주권을 내 드렸다면 분명 한 집안의 봄이 한양의 봄으로 그리고 조선이란 나라의 영원한 봄날을 가능케 했을 것입니다.
또한 서울의 봄은 피로 얼룩진 쿠데타가 아니라, 보혈의 능력으로 세워진 사랑의 나라로 인해 활짝 피어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 영원한 봄은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딤전 4:1)는 말씀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가,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가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먼저 성령의 인도를 따를 때 이 창원에 남산의 봄이 이루어 질 것이며, 마침내 서울의 봄으로 연결되어 하나님 나라의 봄날이 이 땅을 덮을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