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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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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074회 작성일Date 16-09-1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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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단상
  지난 주말, 깜짝 방문한 딸과 함께 양념 치킨을 주문해서 먹으려 했습니다. 종류는 ‘순살 판타스틱’ 입니다. 요즈음은 치킨의 메뉴도 다양해져 고객이 원하는 부분과 맛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습니다. ‘순살 판타스틱’ 은 닭뼈가 없이 살점만으로 요리한 종류 입니다. 그러나 배달 된 치킨은 ‘프라이 쓰리 강냉이’ 라는 다른 종류였습니다. 뚜껑을 열어 보니 세 종류로 나눠는데 한 가지는 켄터키치킨 식으로 튀긴 것, 또 한 가지는 간장 소스에 구운 것, 세 번째는 매운 양념으로 버무린 것이었습니다. 과연 ‘쓰리 (three)’ 라는 이름이 들어갈 만 했습니다. 저는 이왕 배달된 것이니 그냥 먹자고 했는데, 딸 녀석은 우리가 주문한 종류로 교환을 요청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치킨 가게에 다시 전화를 해서 배달에 오류가 있었으니 주문한 것으로 바꾸어 달라고 했습니다.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던 저는 갑자기 치킨을 배달하던 청년이 떠올랐습니다. 아르바이트 학생 같은 젊은이 였는데, 제가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수고비라고 주니까 작은 액수 였는데도 고맙다고 하면서 총총 걸음으로 돌아갔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치킨을 바꿔주러 다시 집까지 온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치킨을 다시 만들어 보내려면 가게 주인은 그 만큼 손해를 볼 수 있으니까 그냥 배달 된 것을 먹자고 설득했습니다. 딸도 제 의견을 따라서 다시 치킨 가게에 전화를 해서 교환 요청을 취소한다고 말 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치킨 가게 주인이 고맙다고 하면서 다음번에는 실수 없도록 하겠다고 단단히 다짐을 했습니다. 치킨을 먹으면서 딸에게 ‘우리의 작은 양보가 여러 사람을 기분 좋게 해 주었구나’ 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사실 ‘순살 판타스틱’ 이나 ‘프라이 쓰리 강냉이’ 나 다 같은 닭고기 입니다. 양념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 먹는 데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굳이 내가 주문 한 것을 먹어야 한다고 고집 부리다 보면 배달원 청년이 두 번 같은 길을 와야 하고, 치킨 가게 주인은 혹시 반품된 치킨을 처리하지 못 하고 그 만큼 손해를 볼 수 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장을 관철 시킨 후에 먹는 치킨은 오히려 씁쓸한 뒷맛을 남기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바로 그 다음 날 주일 설교 제목이’ 진실과 화평의 시대’ 였습니다 (스갸랴 8:19) 이 말씀은 명령이 아니라 약속 입니다.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운 시대를 회복하여 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다른 사람과의 평화를 사랑하며 살 수 있게 해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계획입니다. 따라서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살면 갑작스러운 일들을 만날 때에도 당황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의 화평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차분하게 대처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란 말씀이 내 속에서 나를 다스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투거나 싸울 수 있는 상황 앞에서 ‘화평을 사랑하라’ 는 이 한 마디가 우리를 자제 시키고 우리의 언어와 행동을 절제하게 해준다면 그 자리가 바로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 하는 자리가 될 것 입니다. 인생이란 어쩌면 치킨 고르기를 위한 싸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종류의 치킨을 먹는가를 위해서 평생을 다투고 싸우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어떤 아파트에 사는가? 큰 집에 사는가? 작은 집에 사는가? 어떤 차를 타는가? 어떤 학교를 나왔는가? 어떤 종류의 식사를 하는가? 어떤 옷을 입는가? 어떤 명품 가방을 드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치킨의 종류를 고르듯이 따지고 겨루며 삽니다. 순살 판타스틱’도, ‘프라이 쓰리 강냉이’도, 모두 나름대로 특징이 있는 메뉴 들 입니다. 내가 꼭 주장하고 취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치킨의 종류가 아니라 말씀의 순종 뿐 이기를 기도합니다. 매 번 딸과 함께 치킨을 먹을 때마다 치킨은 다 같은 치킨이다 라는 인생의 지혜를 되새기며 치킨을 즐겨 볼 까 싶습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