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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투석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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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212회 작성일Date 16-08-2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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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석 단상  신장 투석을 시작했습니다. 주사 바늘을 하나는 팔에, 또 하나는 발에 꽂았습니다. 주사 바늘 둘을 모두 팔이나 팔목에 꽂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저는 아직 팔의 혈관이 발달되지 못해서 당분간은 팔과 발에 나누어 꽂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팔과 발에 큰 주사 바늘을 꽂고 약 두 시간 가량을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합니다. 내 몸속의 피가 주사 바늘을 통해 빠져 나갔다가 투석 기계를 거쳐 다시 다른 주사 바늘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옵니다. 팔과 발에 주사 바늘을 꽂으면서 감히 예수님의 십자가의 못이 연상 되었습니다. ‘그 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 박았네, 녹 슨 세 개의 그 못으로…’ 제 귓전에는 고난 주간에 많이 부르던 ‘세 개의 못’ 이라는찬양이 들리는 듯 했고 피가 흘러 나가서 투석 기계를 거치는 동안 철썩 철썩’ 하며 들리는 소리는 나를 위해 흘리는 예수님의 보혈의 소리를 듣는 듯 했습니다. 나는 건강을 위해 잠깐, 약간의 아픔을 견디고 있건만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여섯 시간의 엄청난 고통을 견디셔야 했습니다. 간호사가 주사 바늘을 꽂을 때 사용하라고 피부 마취제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로마 군병이 가져다주는 마취제로 쓰이는 몰약 탄 포도주를 거부하십니다.(막 15:23) 우리를 위해 죄의 대가를 고통의 형벌 그대로 받아 드리시기 위해서 입니다. 투석을 받으면서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내 몸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것은 몸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 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죽음이 새로운 부활의 세계를 여는 시작임을 소망했습니다. 주님의 죽음이 그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죽음이 주는 자유와 해방을 맛보는 듯 했습니다. 죽음은 진정한 출애굽(Exodus)이라는 어느 글의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별세(別世)를 Exodus라고 하셨습니다.(눅 9:31) 짧은 시간이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연상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투석을 마치고 나오면서 암 투병 하시던 어느 분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암이라는 친구를 붙여 주셔서 제 평생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암을 친구로 받아 드리는 마음과 같이 나는 이제 투석을 친구로 받아 드려야 합니다. 내 어머니의 태속에서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조성하실 때 내 몸 속에 붙여 주신 이 친구가 환갑이 넘은 나이가 되서야 찾아 왔습니다. 그 친구 덕분에 주님의 십자가와 죽음 너머의 소망을 묵상하게 되었으니 과연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친구답습니다. 이 친구 덕분에 살아 있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고 하루하루가 더욱 귀하고 의미가 있어집니다. 신장 투석을 하면서까지 살아야 하는 삶의 의미를 항상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면서 까지 우리를 새 생명으로 살게 해주신 그 의미를 찾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사랑하라’ 는 말이 있듯이 오래 미루어 왔던 투석을 이제는 사랑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매 번 투석을 할 때마다 십자가를 묵상하고 죽음을 연상하며 부활의 새로운 세계를 소망할 수 있다면 사랑할 만한 고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날 투석은 새로운 세계를 여는 잊지 못할 첫 경험이었습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