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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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249회 작성일Date 16-07-12 11:02본문
곡 성
곡성은 오백만 관객을 넘어선 화제의 영화입니다. 칸 영화제의 비경쟁 부분으로 출품되어 세계 영화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면 이 시대 사람들의 정신문화를 알 수 있을 것 같아 저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이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저의 흥미를 유발시킨 것은 첫 장면에 성경 말씀이 소개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 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눅 24:38-39) 감독 나홍진이 기독교 신자인지는 확인 되지 않았으나 그의 감독 후기에 의하면 그는 이 영화를 위해 기독교, 천주교, 무속인 들을 만났고 네팔까지 여행하면서 그 곳의 종교도 알아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종교와 인간을 접목시키고자 성경 구절을 인용 했을 뿐 성경 말씀에 대한 그의 개인적 신앙은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감독이 예수님의 부활 후의 말씀을 이 영화에 인용 한 점에 대해 이 시대의 정신문화를 비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곡성은 곡(哭) 하는 소리의 곡성과 영화의 배경이 되는 전남 곡성의 동음이어 입니다. 감독의 고향이 곡성이라고 하니 감독은 자기 고향의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의 곡성을 표현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곡성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는 일본의 외지인이 예수님이 하신 누가복음의 그 말씀을 인용합니다.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나는 살과 뼈가 있으니 유령이 아니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드디어는 이 일본인이 사실은 유령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저는 그 마지막 장면에서 마치 예수님조차도 육체로 부활하신 것이 아닌 영으로 그 모습을 나타내는 가현설(假現設)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가현설은 초대 교회를 공격했던 이단의 교리였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 자체가 육체의 인간이 아니라 모습만 보이는 영적인 존재였다고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한 것입니다. 성육신을 인정하지 않으니 육체의 부활 또한 인정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런 거짓 교리가 이천년 전에 있었는데, 21세기의 오늘까지 여전히 사람들의 의식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물론 감독이나 극작가는 이런 기독교 역사까지 반영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의 이단의 가르침이 영화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은 과연 사탄은 문화를 점령하고 있다는 어느 문화 평론가의 말이 실감됩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한 편의 오락 영화로 볼 수 있는 작품 속에서 성경 말씀을 잘못 오용하고 있는 세태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어둠의 세력들이 우리 의식을 공격 해옵니다. ’주여, 우리를 긍휼이 여기소서!’ 이 시대의 아픔은 정치나 경제에 있지 않습니다. 외교나 국방도 아닙니다. 이 시대의 아픔은 진리가 거짓과 혼합되어 가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영화 곡성을 보며 진정으로 곡성을 내야 하는 사람은 진리가 혼합되어져 가는 이 시대를 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애통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 5:4)애통이 곡성이지 않겠습니까? 나팔수 강 승 구
곡성은 오백만 관객을 넘어선 화제의 영화입니다. 칸 영화제의 비경쟁 부분으로 출품되어 세계 영화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면 이 시대 사람들의 정신문화를 알 수 있을 것 같아 저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이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저의 흥미를 유발시킨 것은 첫 장면에 성경 말씀이 소개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 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눅 24:38-39) 감독 나홍진이 기독교 신자인지는 확인 되지 않았으나 그의 감독 후기에 의하면 그는 이 영화를 위해 기독교, 천주교, 무속인 들을 만났고 네팔까지 여행하면서 그 곳의 종교도 알아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종교와 인간을 접목시키고자 성경 구절을 인용 했을 뿐 성경 말씀에 대한 그의 개인적 신앙은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감독이 예수님의 부활 후의 말씀을 이 영화에 인용 한 점에 대해 이 시대의 정신문화를 비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곡성은 곡(哭) 하는 소리의 곡성과 영화의 배경이 되는 전남 곡성의 동음이어 입니다. 감독의 고향이 곡성이라고 하니 감독은 자기 고향의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의 곡성을 표현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곡성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는 일본의 외지인이 예수님이 하신 누가복음의 그 말씀을 인용합니다.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나는 살과 뼈가 있으니 유령이 아니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드디어는 이 일본인이 사실은 유령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저는 그 마지막 장면에서 마치 예수님조차도 육체로 부활하신 것이 아닌 영으로 그 모습을 나타내는 가현설(假現設)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가현설은 초대 교회를 공격했던 이단의 교리였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 자체가 육체의 인간이 아니라 모습만 보이는 영적인 존재였다고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한 것입니다. 성육신을 인정하지 않으니 육체의 부활 또한 인정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런 거짓 교리가 이천년 전에 있었는데, 21세기의 오늘까지 여전히 사람들의 의식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물론 감독이나 극작가는 이런 기독교 역사까지 반영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의 이단의 가르침이 영화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은 과연 사탄은 문화를 점령하고 있다는 어느 문화 평론가의 말이 실감됩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한 편의 오락 영화로 볼 수 있는 작품 속에서 성경 말씀을 잘못 오용하고 있는 세태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어둠의 세력들이 우리 의식을 공격 해옵니다. ’주여, 우리를 긍휼이 여기소서!’ 이 시대의 아픔은 정치나 경제에 있지 않습니다. 외교나 국방도 아닙니다. 이 시대의 아픔은 진리가 거짓과 혼합되어 가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영화 곡성을 보며 진정으로 곡성을 내야 하는 사람은 진리가 혼합되어져 가는 이 시대를 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애통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 5:4)애통이 곡성이지 않겠습니까?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