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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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062회 작성일Date 16-12-17 16:21본문
크리스마스 단상
저희 집에는 강아지가 한 마리 있습니다. 태어나서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데리고 와서 지금까지 같이 살았으니 열 살이 넘습니다. 강아지 나이로는 할머니 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저만 보면 안아 달라고 앞발을 쳐들고 깡충 거립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는 제가 방바닥에 누웠더니 제 품에 와서 등을 기대고 강아지 역시 저 같이 누웠습니다. 제가 서 있을 때에는 안아 달라고 깡충거리던 녀석이 내가 누우니까 다가와서 편안하게 저를 기대고 눕는 것입니다. 아마도 강아지가 볼 때에도 누워 있는 저의 키가 자기와 비슷하게 보였던지 주인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친구 같이 제 앞에 드러누웠습니다. 내 품에 등을 기대고 누워 있는 강아지를 살며시 안아주며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성육신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높이 계시고 우리는 낮은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높이 계신 하나님께 무언가를 달라고 깡충 거리듯 애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애원하고 간구하는 동안은 주인과 종의 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우리와 같이 낮은 자가 되신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높으신 하나님이 낮은 사람이 되어 주신 크리스마스의 성육신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종으로 부리기보다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자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이제 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바를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15:15) 친구는 눈높이가 같습니다. 친구는 서로를 올려 보거나 내려 보아서는 않됩니다. 큰 자는 작아 지고 높은 자는 낮아져야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친구가 되시고자 사람으로 작아지셔서 낮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것도 추운 겨울에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그것은 이 땅의 많은 춥고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친구는 살림 형편도 가정 환경도 비슷해야 친구가 되기 쉽습니다. 요즈음 국정 농단 국정감사 청문회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의 마음이 허전하고 씁쓸한 것은 친구 같은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반 서민들의 삶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는 승마, 골프, 태반주사, 백색주사, 성형수술, 입학특혜, 인사 청탁, 비선(秘線), 실세…이런 말들이 청문회 마다 꼬리를 물고 나오는 것을 보며 국민들은 허탈해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세대는 더욱 친구 같은 지도자가 필요할 때 입니다. 높은 자리에서 국민을 내려다보는 지도자가 아니라 눈높이를 맞추어 함께 낮아지는 리더가 절실할 때 입니다. 큰 실적이나 발전이 없어도 같이 있어 주는 리더, 함께 키를 낮추어 주는 지도자, 그래서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친구 같은 구원자가 되어 주시고자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거짓과 비리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 진실과 정직의 친구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그 분의 낮아지신 품에 등을 기대고 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 입니다. 이 번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을 친구로 만나는 계절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사람의 친구가 되어주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집 강아지가 누워있는 내 품에 안기며 크리스마스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었으니 강아지 또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크리스마스 선물인 듯싶습니다. -나팔수 강승구-
저희 집에는 강아지가 한 마리 있습니다. 태어나서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데리고 와서 지금까지 같이 살았으니 열 살이 넘습니다. 강아지 나이로는 할머니 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저만 보면 안아 달라고 앞발을 쳐들고 깡충 거립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는 제가 방바닥에 누웠더니 제 품에 와서 등을 기대고 강아지 역시 저 같이 누웠습니다. 제가 서 있을 때에는 안아 달라고 깡충거리던 녀석이 내가 누우니까 다가와서 편안하게 저를 기대고 눕는 것입니다. 아마도 강아지가 볼 때에도 누워 있는 저의 키가 자기와 비슷하게 보였던지 주인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친구 같이 제 앞에 드러누웠습니다. 내 품에 등을 기대고 누워 있는 강아지를 살며시 안아주며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성육신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높이 계시고 우리는 낮은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높이 계신 하나님께 무언가를 달라고 깡충 거리듯 애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애원하고 간구하는 동안은 주인과 종의 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우리와 같이 낮은 자가 되신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높으신 하나님이 낮은 사람이 되어 주신 크리스마스의 성육신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종으로 부리기보다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자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이제 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바를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15:15) 친구는 눈높이가 같습니다. 친구는 서로를 올려 보거나 내려 보아서는 않됩니다. 큰 자는 작아 지고 높은 자는 낮아져야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친구가 되시고자 사람으로 작아지셔서 낮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것도 추운 겨울에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그것은 이 땅의 많은 춥고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친구는 살림 형편도 가정 환경도 비슷해야 친구가 되기 쉽습니다. 요즈음 국정 농단 국정감사 청문회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의 마음이 허전하고 씁쓸한 것은 친구 같은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반 서민들의 삶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는 승마, 골프, 태반주사, 백색주사, 성형수술, 입학특혜, 인사 청탁, 비선(秘線), 실세…이런 말들이 청문회 마다 꼬리를 물고 나오는 것을 보며 국민들은 허탈해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세대는 더욱 친구 같은 지도자가 필요할 때 입니다. 높은 자리에서 국민을 내려다보는 지도자가 아니라 눈높이를 맞추어 함께 낮아지는 리더가 절실할 때 입니다. 큰 실적이나 발전이 없어도 같이 있어 주는 리더, 함께 키를 낮추어 주는 지도자, 그래서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친구 같은 구원자가 되어 주시고자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거짓과 비리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 진실과 정직의 친구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그 분의 낮아지신 품에 등을 기대고 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 입니다. 이 번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을 친구로 만나는 계절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사람의 친구가 되어주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집 강아지가 누워있는 내 품에 안기며 크리스마스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었으니 강아지 또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크리스마스 선물인 듯싶습니다. -나팔수 강승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