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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정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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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136회 작성일Date 16-11-1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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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정리하며 
책 정리를 했습니다. 이사를 하면서 그동안 가지고 다녔던 책들을 정리했습니다. 이십여 년 전 뉴질랜드에서 처음 신학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책과 자료들로부터 미국과 한국을 거쳐 오면서 사 모았던 책들까지 모두를 다 끄집어내면서 살펴보았습니다. 한 권, 한 권 모두가 정들었던 책들이었습니다. 어떤 책은 읽다가 감동이 커서 책 가운데 고개를 묻고 한참을 울었던 책도 있었고, 또 어떤 책은 구절이 너무 좋아서 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자국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저자가 직접 사인을 해서 줬던 책도 있었고, 제가 찾아 가서 저자의 사인을 받은 책도 있었습니다. 학교 숙제 때문에 서너 줄의 인용 구절을 찾으려고 구입 했던 책들도 있었습니다. 다 읽어 보지 못 한 책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저의 지난 시간들을 함께해 준 친구이며 애인과 같은 책들이었습니다. 이제는 제 손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다시 공부를 할 것도 아니고 또 시력 때문에 책을 읽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서너 페이지만 읽어도 눈이 피곤해서 이 많은 책들을 다시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교역자들에게 주기로 했습니다. 지난 토요일 교역자들이 제 서재에 와서 필요한 책들을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영어로 된 책들은 주로 레오 목사 가져갔고 나머지 책들은 교역자들의 취향에 따라 마음껏 골라서 가져갔습니다. 뭉텅이로 책들이 빠져 나갈 때마다 저의 추억들도 빠져 나가는 듯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어차피 제 손을 떠나야 할 책들이지만 그래도 정들었던 책들이 떠나간다는 것이 못내 서운했습니다. 책들이 다 뽑히고 난 후 책장의 빈자리를 보면서 인생이란 이렇게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떠나보내듯 가족도 떠나보내야 합니다. 부모님도 우리 보다 먼저 떠나보내야 하고 형제도 그
렇게 우리 곁을 차례차례로 떠나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 친구도 떠나가고 성도도 떠나갑니다. 평생 함께 있을 것 같았던 사람들이 떠나갈 때에야 인생이란 떠나보내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름다운 추억도 시간 속으로 떠나보내야 하고 젊음도, 건강도, 외모도, 모두 떠나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드디어는 우리 자신도 떠나야 합니다. 떠나보내기를 잘 훈련한 사람은 자신이 떠날 때에도 담담히 이별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항상 떠나기를 연습하셨던 것 같이 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고치시고 모두를 떠나 보내셨습니다. 무리들이 떠나지 않으면 예수님이 먼저 떠나시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신앙이란 떠나는 것임을 알려 주고 싶으셨나 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앙의 길을 순례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나무들이 잎들을 떠나보내어 낙엽으로 떨어뜨리듯 가을은 우리를 겨울로 떠나보냅니다. 그리고 겨울은 또한 우리를 다음 해로 떠나보내고 맙니다. 그렇게 등 떠밀려 보내지다 보면 마지막에는 이 세상도 우리를 떠나보내는 때가 올 것 입니다. 그 때를 준비하듯 떠나보내는 것을 연습하며 살라고 하나님께서 책 정리를 시키셨나 봅니다. 잘 떠나보내면 저 또한 잘 떠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부르지 않는 노래는 노래가 아니라는 말과 같이 읽히지 않는 책은 책이 아닐 것입니다. 아까워도 책장에서 읽히지 않는 책보다 남의 손에서라도 읽히는 것이 책의 보람일 것입니다. 그래도 가을에 책 정리는 계절을 더욱 서글프게 합니다. 가을의 뒷모습을 보듯이 떠나는 책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겨울을 지나서 책정리를 할 껄 그랬나 봅니다. 봄의 희망이 책을 떠나보내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최백호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라고 노래했을까요?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