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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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202회 작성일Date 16-10-15 10:18본문
아수라
아수라(阿修羅)는 인도의 신화에 나오는 신과 인간의 혼합 존재입니다. 반신 반인으로 선을 대적하는 악한 무리를 칭합니다. 따라서 아수라장이라고 할 때에는 악신들이 들끓는 지옥을 연상하게 하려고 쓰이는 말입니다. 이 동일한 명칭의 제목으로 ‘아수라’ 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극본은 감독인 김 성수(55세) 씨가 직접 썼는데 처음의 제목은 ‘반성’ 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으로 출연한 배우 황정민 (박정배 시장역) 씨가 대본을 읽어 본 후 아수라장이네 라고 한데서 제목을 아수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영화는 이 시대의 어두운 세상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돈, 권력, 출세, 인맥, 모함, 결탁, 폭력, 살인, 음란, 마약이 총 출동하는 제목 그대로 아수라의 모습입니다. 감독이 이런 세상을 의도적으로 묘사한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극치를 이룹니다. 시장과 그를 쫓은 검사가 모두 죽고 그 중간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형사 (정우성 분)마저 죽음으로 끝나면서 그들의 후회와 분노와 원망의 표정이 얼굴에 흘리는 피와 어울리며 악귀(아수라)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과연 지옥은 이 세상에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죽음 이전에 먼저 이 세상에서 지옥을 맛보게 하신 것은 지옥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다는 철저한 자각을 가지게 하시기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형사가 그 고백을 이렇게 혼자 말로 내뱉습니다. ‘아무리해도 여기서 빠져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이 독백은 지옥에 빠진 모든 사람이 토로하는 호소일 것입니다. 나 혼자 힘으로는 결코 빠져 나갈 수 없는 아수라, 지옥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돈과 권력, 미움과 음란, 쾌락과 유혹을 접하며 삽니다. 그런 세상임을 확인할 때 마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성공해도 지옥에서의 성공이고 출세해도 지옥에서의 출세입니다. 행복도 지옥 안에서의 행복이고 비전도 지옥 안에서의 비전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이 지옥에서의 구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 회개하라는 것은 지옥에서 돌아서 나오는 것입니다. 지옥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 오는 것이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출세와 행복을 바라는 것은 여전히 지옥에 남아서 아수라들과 어울려 살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는 사망입니다. (롬6: 23) 지옥이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 되듯이 천국 또한 이 세상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셔서 이제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천국을 살 수 있습니다. 지옥에서 아수라와 함께 사는 것 같이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길이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생명입니다. 지금도 뉴스 보도에는 아수라의 모습이 계속 등장합니다. 권력층의 비리, 돈과 결탁하는 부정과 부패, 여성을 음란의 대상으로 상품화 하는 성의문란, 자기의 소유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풍토, 이런 모습들이 바로 아수라의 모습이라고 감독은 말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장면들이 너무 잔혹해서 보기가 끔찍했는데, 더 끔찍한 것은 영화와 같은 일들이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아수라들과 함께 살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다. 성도는 아수라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수라 밑에서 그 사실을 모른 채 아수라의 종이 되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세상이 아니라 세상 속의 사람들에게 더 깊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나팔수 강 승 구
아수라(阿修羅)는 인도의 신화에 나오는 신과 인간의 혼합 존재입니다. 반신 반인으로 선을 대적하는 악한 무리를 칭합니다. 따라서 아수라장이라고 할 때에는 악신들이 들끓는 지옥을 연상하게 하려고 쓰이는 말입니다. 이 동일한 명칭의 제목으로 ‘아수라’ 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극본은 감독인 김 성수(55세) 씨가 직접 썼는데 처음의 제목은 ‘반성’ 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으로 출연한 배우 황정민 (박정배 시장역) 씨가 대본을 읽어 본 후 아수라장이네 라고 한데서 제목을 아수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영화는 이 시대의 어두운 세상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돈, 권력, 출세, 인맥, 모함, 결탁, 폭력, 살인, 음란, 마약이 총 출동하는 제목 그대로 아수라의 모습입니다. 감독이 이런 세상을 의도적으로 묘사한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극치를 이룹니다. 시장과 그를 쫓은 검사가 모두 죽고 그 중간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형사 (정우성 분)마저 죽음으로 끝나면서 그들의 후회와 분노와 원망의 표정이 얼굴에 흘리는 피와 어울리며 악귀(아수라)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과연 지옥은 이 세상에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죽음 이전에 먼저 이 세상에서 지옥을 맛보게 하신 것은 지옥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다는 철저한 자각을 가지게 하시기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형사가 그 고백을 이렇게 혼자 말로 내뱉습니다. ‘아무리해도 여기서 빠져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이 독백은 지옥에 빠진 모든 사람이 토로하는 호소일 것입니다. 나 혼자 힘으로는 결코 빠져 나갈 수 없는 아수라, 지옥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돈과 권력, 미움과 음란, 쾌락과 유혹을 접하며 삽니다. 그런 세상임을 확인할 때 마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성공해도 지옥에서의 성공이고 출세해도 지옥에서의 출세입니다. 행복도 지옥 안에서의 행복이고 비전도 지옥 안에서의 비전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이 지옥에서의 구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 회개하라는 것은 지옥에서 돌아서 나오는 것입니다. 지옥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 오는 것이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출세와 행복을 바라는 것은 여전히 지옥에 남아서 아수라들과 어울려 살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는 사망입니다. (롬6: 23) 지옥이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 되듯이 천국 또한 이 세상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셔서 이제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천국을 살 수 있습니다. 지옥에서 아수라와 함께 사는 것 같이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길이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생명입니다. 지금도 뉴스 보도에는 아수라의 모습이 계속 등장합니다. 권력층의 비리, 돈과 결탁하는 부정과 부패, 여성을 음란의 대상으로 상품화 하는 성의문란, 자기의 소유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풍토, 이런 모습들이 바로 아수라의 모습이라고 감독은 말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장면들이 너무 잔혹해서 보기가 끔찍했는데, 더 끔찍한 것은 영화와 같은 일들이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아수라들과 함께 살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다. 성도는 아수라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수라 밑에서 그 사실을 모른 채 아수라의 종이 되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세상이 아니라 세상 속의 사람들에게 더 깊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