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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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120회 작성일Date 16-08-20 13:43본문
부산 행
부산에 볼 일이 있어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아침부터 폭염의 날씨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장유를 지나 김해를 지날 때 즈음, 갑자기 앞 쪽에서 검은 구름이 뒤 덮어 오더니 빗줄기가 내리 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비가 오는 듯싶더니 곧이어 천둥소리와 함께 거대한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차를 때리는 우두둑 하는 빗소리와 함께 빗줄기는 점점 더 세 차졌습니다. 급기야는 물 폭탄을 쏟아 붓듯 차 위로 비가 내렸습니다. 이른바 국지성 폭우라는 것입니다. 차 앞 유리의 윈도우 브러시를 최 고속으로 작동해도 한 치 앞도 볼 수 없이 비가 차창을 가렸습니다.
제가 예전에 미국 텍사스에서 공부할 때 경험했던 토네이도 보다 더 심한 빗줄기였습니다. 아내도 긴장이 되는 듯 앞이 안보여 운전을 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비상등을 켰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제가 보기에도 과연 이런 상태에서 운전을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차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서행을 했다가는 뒤차에 부딪힐 것 같고, 차선을 바꾸어서 옆길에 세우고 싶어도 역시 추돌 사고가 날 것 같았습니다. 갈 수도 없고 설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빗물로 덮여 버린 차의 앞 유리에 희미하게나마 앞 차 뒤 범퍼의 미등이 보였습니다. 대 낮인지라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멀리서 보고 따라 갈 만한 정도의 불빛 이었습니다. 도로의 차선도 보이지 않고 길의 굽어짐도 볼 수 없는 막막한 상활에서 길을 찾아 운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희미한 앞 차의 미등뿐이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그 시간 동안 우리 부부는 오로지 앞 차의 뒤 미등만을 바라보고 따라 갔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시 119:105). 수 없이 읽고 외우던 말씀이지만 그 날처럼 절실하게 그렇구나 하고 실감 된 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인생의 등이요 빛이 될 수밖에 없는 때는 나의 인생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완전한 막막함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낄 때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인생의 등으로 삼기 위해서는 내가 처 해 있는 상황이 얼마나 암담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상태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 내 상황을 먼저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빛으로 찾기 전에 내가 어떤 처지에 있는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처지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고난입니다. 평소에는 우리의 처지가 어떤지 생각조차도 안하고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갑니다. 마치 날씨 좋은 날 고속도로를 계속 달리는 차와 같이 인생의 페달을 밟으며 살아갑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그 말씀이 나를 살리고 인도하는 등이요 빛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좋은 교훈의 어휘일 뿐 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고난이 찾아 올 때, 더 이상 인생의 악세레이터를 밟을 수 없을 때, 드디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등으로 찾게 되고 빛으로 따라 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그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도저히 앞으로 나아 갈 수 없어서 마치 앞 차의 미등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좇아가듯이 따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내가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밖에 없어서 믿게 되는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선택 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믿음을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 하시면서 칭찬해 주시니 이것이야 말로 은혜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즈음 ‘부산행’ 이라는 영화가 천 만 관객을 돌파했다는데, 그 날 저의 부산행은 하나님의 말씀의 소중함을 실감하게 하는 영화보다 더 인상 깊은 사건이었습니다.
나팔수 강 승 구
부산에 볼 일이 있어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아침부터 폭염의 날씨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장유를 지나 김해를 지날 때 즈음, 갑자기 앞 쪽에서 검은 구름이 뒤 덮어 오더니 빗줄기가 내리 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비가 오는 듯싶더니 곧이어 천둥소리와 함께 거대한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차를 때리는 우두둑 하는 빗소리와 함께 빗줄기는 점점 더 세 차졌습니다. 급기야는 물 폭탄을 쏟아 붓듯 차 위로 비가 내렸습니다. 이른바 국지성 폭우라는 것입니다. 차 앞 유리의 윈도우 브러시를 최 고속으로 작동해도 한 치 앞도 볼 수 없이 비가 차창을 가렸습니다.
제가 예전에 미국 텍사스에서 공부할 때 경험했던 토네이도 보다 더 심한 빗줄기였습니다. 아내도 긴장이 되는 듯 앞이 안보여 운전을 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비상등을 켰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제가 보기에도 과연 이런 상태에서 운전을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차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서행을 했다가는 뒤차에 부딪힐 것 같고, 차선을 바꾸어서 옆길에 세우고 싶어도 역시 추돌 사고가 날 것 같았습니다. 갈 수도 없고 설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빗물로 덮여 버린 차의 앞 유리에 희미하게나마 앞 차 뒤 범퍼의 미등이 보였습니다. 대 낮인지라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멀리서 보고 따라 갈 만한 정도의 불빛 이었습니다. 도로의 차선도 보이지 않고 길의 굽어짐도 볼 수 없는 막막한 상활에서 길을 찾아 운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희미한 앞 차의 미등뿐이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그 시간 동안 우리 부부는 오로지 앞 차의 뒤 미등만을 바라보고 따라 갔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시 119:105). 수 없이 읽고 외우던 말씀이지만 그 날처럼 절실하게 그렇구나 하고 실감 된 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인생의 등이요 빛이 될 수밖에 없는 때는 나의 인생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완전한 막막함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낄 때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인생의 등으로 삼기 위해서는 내가 처 해 있는 상황이 얼마나 암담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상태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 내 상황을 먼저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빛으로 찾기 전에 내가 어떤 처지에 있는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처지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고난입니다. 평소에는 우리의 처지가 어떤지 생각조차도 안하고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갑니다. 마치 날씨 좋은 날 고속도로를 계속 달리는 차와 같이 인생의 페달을 밟으며 살아갑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그 말씀이 나를 살리고 인도하는 등이요 빛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좋은 교훈의 어휘일 뿐 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고난이 찾아 올 때, 더 이상 인생의 악세레이터를 밟을 수 없을 때, 드디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등으로 찾게 되고 빛으로 따라 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그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도저히 앞으로 나아 갈 수 없어서 마치 앞 차의 미등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좇아가듯이 따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내가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밖에 없어서 믿게 되는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선택 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믿음을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 하시면서 칭찬해 주시니 이것이야 말로 은혜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즈음 ‘부산행’ 이라는 영화가 천 만 관객을 돌파했다는데, 그 날 저의 부산행은 하나님의 말씀의 소중함을 실감하게 하는 영화보다 더 인상 깊은 사건이었습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