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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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067회 작성일Date 17-03-04 11:56본문
우리 교회 앞에 ‘국수 한 그릇’ 이라는 국수 전문 음식점이 있습니다. 교회 앞길만 건너면 갈 수 있는 거리라서 편하게 갈 수 있는 식당 입니다. 더욱이 이 식당은 우리 교회 자매가 운영하는 곳 인지라 갈 때마다 성도를 심방하는 것 같아 자주 가게 됩니다. 지난 토요일에도 성경대학 강의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시는 강사와 몇 몇 형제들과 함께 이 식당에 갔습니다. 종강 파티 겸 점심 식사를 같이 나누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가보니 식당 좌석이 우리끼리 오붓하게 식사하기가 어려운 실정 이었습니다. 여덟 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없어서 이층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식당은 이층에서 식사 후 커피를 자유롭게 마실 수 있는 서비스 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식당 종업원은 이층은 커피를 마시는 곳이라서 식사는 안 된다고 거절했습니다. 종업원으로서는 당연한 대답이었을 것입니다. 자리가 좁아도 테이블을 붙여 앉으면 우리 일행이 모두 함께 식사 할 수 있다고 하며 식당 종업원은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손님들 하고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유인즉, 식당 주인이 우리 교회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주인을 좀 보자고 했습니다. 주인의 힘을 빌어서 이층을 사용하려는 좋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침 그 날 주인 자매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종업원이 앉으라는 대로 테이블을 두 개 붙여 앉아 식사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주문한 국수를 먹으면서 갑자기 얼마 전에 보았던 ‘더 킹 (The King)’이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권력을 잡은 자가 왕이라는 그릇된 이 사회의 모습들을 고발하는 영화였습니다. 99퍼센트의 정직한 검사들은 모두 어리석은 사람들이고 권력의 줄에 서는 1퍼센트의 검사들만이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라는 그릇된 가치관에서 나오는 온갖 추태, 음모, 아부, 배신, 거짓, 그리고 범법 행위까지 화면 전체를 덮고 있었습니다. 검사라도 권력자의 입김이 들어가야 이 세상에서 힘을 과시하고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우리 속에도 똑같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 국수집에서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식당 이층은 식사를 할 수 없다고 종업원이 분명히 설명했음에도 저는 주인의 힘을 빌어서 이층에서 식사를 해 보려는 시도를 한 것입니다. 국수집 이지만 주인의 힘이 종업원의 설명을 내려 누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 마음에도 킹이 되고 싶다는 유혹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층에서 식사 할 수 없다는 국수집 질서를 주인의 지위를 힘입어 무시하려는 이 작은 계략이나 권력자의 힘을 빌려 이 나라의 모든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내가 킹이 되어 살아 보겠다는 허황된 사람들의 생각이나 그 근본은 같지 않은가 싶습니다. 과연 우리 속에는 선한 것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맞습니다. (막 7:16) 식사를 마치고 이층에 올라가서 셀프 커피를 한 잔씩 나누면서 담소를 이어 갔습니다. 이층은 식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조용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저의 의도대로 주인의 힘을 빌려 이층에서 식사를 했다면 그 후 이층에 올라오신 분들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분위기의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을 것입니다. 나 하나의 힘을 과시하며 사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함부로 권력을 자신의 힘으로 쓸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쓰는 그 힘 때문에 피해 받는 사람이 바로 내 가족, 우리 교회 성도일 수도 있기 때문 입니다. 뉴스를 보기 싫게 하는 요즘 사회 문제들이 사실은 우리 속에 동일하게 숨어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 이었습니다. 국수 한 그릇 식당에 갈 때 마다 그 사실을 떠올리며 힘의 유혹을 떨쳐 버려야겠습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