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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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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997회 작성일Date 17-08-1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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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곤 했습니다. 어머니를 따라가면 집에서는 먹어보지 못 한 것들을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 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냉면입니다. 어느 여름 날, 어머니는 장을 보신 후에 저를 데리고 냉면 집에 가셨습니다. 허름한 집이었는데 어머니와 같이 함흥에서 살다가 피난 오신 할머니가 하시는 냉면집 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고향이라도 온 듯이 평소에는 쓰시지 않던 함경도 사투리를 쓰시면서 할머니와 이야기를 주고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비빔냉면을 주문하셨는데, 저로써는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습니다. 냉면을 먹으려고 얼굴을 냉면 그릇에 가까이 했을 때, 풍겨오는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는 저를 황홀하게까지 했습니다. 먹기도 전에 이미 냄새에 끌린 것입니다. 그리고 냉면을 버무려서 한 젓가락을 말아서 먹었는데, 그때의 그 맛은 평생 저를 냉면 마니아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톡 쏘는 매운 맛과 입에서 느껴지는 함흥냉면의 감칠맛이 그릇에서 입을 떼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때 부터 저는 냉면을 먹을 때만은 아무와도 말을 하지 않고 오로지 냉면 먹는 일에만 집중하는 저 만의 냉면 먹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특히 냉면은 질긴 맛에 먹는 것이므로 면을 자르지 않고 늘어진 그대로 입으로는 씹고 목으로는 넘기는 계속적 행동으로 먹어야 냉면의 본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그 어린 시절에 알아 낸 방법이었습니다. 어머니도 냉면을 좋아하셨는지 시장에 가실 때마다 저를 데리고 냉면 집에 들르시곤 했습니다. 아버지도 모르게, 형들도 모르게,  어린 저만 데리고 어머니 혼자 냉면 집에 들르셔서 냉면을 잡수고 오시는 것이 저하고 어머니만의 비밀 같아서 저는 어머니와 더욱 친밀해 지는 것같아 냉면집 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커서 보니 그 집이 서울에서도 유명한 오장동 함흥냉면 집이었습니다. 그 후 육십 년이 지난 올 여름, 서울에 갈일이 있어서 그 냉면 집을 찾았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가보니 비슷한 냉면 집이 세 곳이 있었습니다. 모두 다 함흥냉면 집인데 어디가 저의 추억의 집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첫 번 째 집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가서 먹어 보았는데, 그 맛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집이 아닌가 보다 하고 그 다음 집으로 갔습니다. 마침 옆집은 휴일이라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집에 갔는데, 가보니 카운터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가 그 옛날 냉면집 할머니와 비슷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혹시 옛날 함흥에서 오신 할머니가 하시던 그 냉면 집이 맞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카운터의 그 아주머니가 바로 그 할머니의 딸이라고 하면서 자기 집이 오장동 냉면의 2대라고 했습니다. 육십 년 전의 냉면 집을 다시 찾았다는 기쁨과 안도감으로 냉면을 주문하여 기대감을 가지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릇에서 부터 풍겨 나오는 참기름의 그 고소한 맛도, 한 젓가락 말아 먹었을 때의 그 맵고 쏘는 맛도 되살아나지 않았습니다. 두 젓가락, 세 젓가락 아무리 먹어도 그 때의 그 맛은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냉면은 다 없어져 가는데, 제가 찾는 그 맛이 되찾아 지지 않자 저는 마음이 슬프기까지 해졌습니다. 그 시절의 맛을 잃었다는 것은 그 시절을 잃어 버렸다는 것과 같이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이 없어졌다면 나의 어린 시절도, 어머니의 모습도, 그리고 나와 어머니 사이에만 있었던 그 비밀도 다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냉면을 다 먹고 그릇에서 얼굴을 떼자 아내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 때 그 맛이 나요?’ 아내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없이 가만히 있는 저에게 아내는 다시 말했습니다. ‘그 때의 그 맛이 아니지요? 냉면 맛이 변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변한 거예요’’ 어쩌면 아내의 말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냉면 맛은 그대로인데 냉면을 먹는 제가 변했기 때문에 냉면 맛도 변한 것이겠지요. 냉면을 같이 먹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내와 딸과 함께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이미 육십 년 전 어린 아이와 달라졌으니까요. 냉면 집을 나서면서 잃어버린 냉면 맛을 찾기보다 어머니와의 추억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는 것일진대 영영한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잊지 않고 사는 것이 지혜일 것입니다. (이사야 40:8)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