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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목회단상

투석단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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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095회 작성일Date 17-08-2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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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투석을 한 지 일 년 되었습니다. 투석을  마치고 나올 때에는 마치 죽었다가 살아 나오는 것 같이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듯합니다. 일주일에 두 번 씩 이런 감정을 느끼니 마치 하루 죽고 삼일 사는 사람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투석하지 않는 삼일 간은 저에게 너무나 귀한 시간들이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갈 수 있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 찾아 봐야 할 사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사람이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고 감사해 보기도 처음 인 것 같습니다. 아파 보아야 건강의 고마움을 아는 것 같이 신체의 자유를 억제 받아 보아야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고마운 줄을 알 수 있습니다. 투석을 받으러 갈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가?  질문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난 지금, 희미하게나마 그 답을 얻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입니다. 병원에서 나오면서 느끼는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가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드려지고 있었습니다. 투석을 해서라도 살아 갈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세상에는 치료가 되지 않는 불치병도 많은데 투석을 통해서라도 제 몸 속의 독소들이 치료가 되니 이 또한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활동할 수 있는 삼일간이 예전의  평범한 날들과는 다른 특별한 날들이 된 것 또한 감사합니다. 이제는 평범한 일상이 평범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날들은 살아 있음에 감사한 날들이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음에 감사한 날들입니다. 영화 만추에서  형무소로부터 삼일 간의 특별 석방을 받아 나온 주인공 여자가 그 동안에 만난 남자와 헤어지면서 ‘I have to go back to prison tomorrow’ (나는 내일 감옥으로 돌아가야 해요) 라고 말하던 그 대사가 떠오릅니다. 삼일이 지나면 나는 내일 병원에 들어가야해 라고 내 스스로에게 말해봅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이 시간들을 더 소중히 더 즐기며 지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투석을 받으려 침상에 누우면 그 때 부터는 죽음을 연상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누워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내가 죽었을 때 이렇게 꼼짝 못하고 누워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일에 한 번 씩 나의 죽음을 연습하게 하시니 이 또한 감사한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면서 죽음을 뛰어넘는 부활을 기대했습니다. (고전 15:31) 부활이 있으므로 오늘의 죽음도 두렵지 않게 받아들이 수 있음을 바울 사도는 역설했습니다. 저 또한 투석을 받으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부활을 실제로 죽어서 받기 전에 투석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부분적으로나마 느끼며 살고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일 년을 지나고 보니 이제는 죽고 다시 사는 것이 제 삶의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도 살아서 이렇게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활의 생명을 살고 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언젠가 실제의 죽음을 넘어 부활을 맞이할 때, 투석도 끝나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몸으로 일어날 때를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역시 좋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안타까운 투석마저도 말입니다. 저의 건강을 염려해 주시는 여러분께 일  년을 잘 넘겼다고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