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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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964회 작성일Date 18-04-29 13:22본문
새벽 기도 자리에 앉으면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영감이 임할 때에는 이것이 새벽기도의 축복이구나 싶습니다. 며칠 전 역시 새벽 기도 자리에 앉았을 때, 갑자기 왜 하나님이 보이지 않지 라는 생각과 함께 혹시 하나님이 안 계신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은 하나님은 창조주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창 1:1)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므로 창조의 세계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토기장이가 자기가 만든 토기 속에 들어 있을 수 없듯이, 창조주는 자기가 창조한 세계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창조주는 창조의 세계 밖에 계십니다. 그래야 세상을 창조할 수 있고 또한 피조물인 인간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밖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창조 세계 안에 살고 있는 피조물인 저는 창조주를 이 창조 세계 속에서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창조 세계 속에 계시지 않는 것이 그 분이 창조주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 세계 안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 하는 것은 너무나 안심되는 일입니다. 만약 창조주를 창조 세계 안에서 쉽게 볼 수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창조주로 계실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가 창조의 세계 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바로 이 자리에서 창조주를 볼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이 창조의 세계 밖에 계시므로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 밖에서 나를 보고 계시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볼 수 있는 물질세계는 아니지만 이 물질 세계를 넘어선 우주 밖에서 나를 지켜보고 계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물질세계 밖의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는 이 창조 세계를 벗어난 눈으로 보아야 창조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눈은 육체 밖의 눈 입니다.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하던 욥의 그 눈으로 보게 됩니다 (욥 9: 26). 그러나 육체를 벗기 전에도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믿음의 눈 입니다. 창조 세계 속에서는 볼 수 없지만 창조 세계 밖에서 나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인정하고, 바라보고, 믿으면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벗어나서 보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그 눈 역시 창조 세계를 벗어난 영적인 눈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눈, 그 눈으로 창조 세계 속의 나를 보는 것이 하나님 우편에서 나를 보는 것 입니다 (엡 2: 6). 창조의 세계 밖에서 나를 본다면 나의 존재 뿐 아니라 나의 상황, 환경, 여건, 심지어는 근심, 걱정, 염려까지도 모두 물질세계 밖에서 내려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높은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고층 빌딩도, 아파트도,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차도도,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도, 그 차를 운전 하는 사람들도, 모두 작게 보이듯 아주 작아져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한 마디 속에 나의 모든 염려와 걱정은 작아집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나는 창조의 세계를 벗어나서 계신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저 또한 하나님 옆에 계시다가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과 같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우리를 예수 같은 사람,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모양 입니다 (행 11: 26). 하나님이 왜 보이지 않지 라는 질문은 하나님을 창조 세계 속으로 끌어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 세계 밖의 하나님께로 이끌어 내주시는 은혜로 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심은 더 깊은 하나님을 아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계시므로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자신을 알게 해주십니다. 의심은 믿음으로 가는 과정일 뿐 입니다.
나팔수 강 승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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