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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 출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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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987회 작성일Date 18-02-1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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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주간 동안 제직들의  새벽기도 출석을 기록하도록 했습니다. 출석 기록의 목적은 이렇게 하면 제직들의 새벽기도가 더 활성화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와 달리 출석 기록 이전이나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인지 출석 결과를 보고 받은 후 실망이 컸습니다. 지금은 기도할 때라고 설교에서도 강조하고 제직들은 새벽을 깨워 함께 기도하자고 출석부까지 비치해서 권유 했는데, 제직들의 호응이 없는데 대해 실망을 넘어 섭섭한 마음까지 일어났습니다. 제직은 목회자의 동역자인데 이렇게 목사의 호소에 반응이 없을 수 있을까? 목사의 호소를 무시하는 것인가? 이런 저런 생각이 제 자신을 우울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며칠 전 예전 미국에서 공부할 때 저를 형님 같이 따르던 어느 목사와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을 회상하다가 요즈음의 제 심정을 나누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던 동생 목사는 ‘왜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려 하십니까?’ 이렇게 조언해 주었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친다는 것은 제가 바로 지난 주 설교에서 인용한 바울 사도의 말씀입니다. (갈 3:3) 나는 설교에서 이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했는데, 정작  내 자신은 이 말씀을 잊고 있지 않은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도가 중요 하다는 것은 성령님께서 주신 마음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강조했고 기도에 대해 시리즈 설교도 하고 새벽기도, 금요기도 등 교회의 기도 시간에 동참 하도록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성령의 방법이 아니라 육신적 방법을 쓰고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시작하신 기도의 강조라면 그 방법 또한 성령님께서 이끄시도록 맡겨야 할 터인데, 저는 출석을 점검하는 육신적 방법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실망과 섭섭함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시작하셨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방법이라면 그 결과는 실망이 아니라 위로와 소망일 것이고 섭섭함보다는 사랑과 격려일 것입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 같이 성령의 방법이면 성령의 결과가 맺혀질 것입니다. (눅 6:44)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얻지 못하고 찔레에서 포도를 얻을 수 없듯이 육신의 생각에서 사랑과 격려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제 마음에 실망과 섭섭함이 남는다는 것은 성령의 방법이  아니고 육신의 방법을 썼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항상 복음은 율법을 완성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율법적 사항들과 율법의 완성을 혼돈해 왔습니다. 새벽 기도, 주일 성수, 헌금 생활, 성경 묵상, 교회 봉사, 이런 것들이 율법의 완성의 모습들이기를 바랬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은혜로 받아드렸다면 그 다음은 감사에서 우러나오는 이런 행동 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놓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롬 13:10) 새벽 기도의 출석점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도를 향한 사랑입니다. 제직들의 의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제직들의 사랑입니다. 비록 목사의 호소를 무시하고 목사와 동역하지 않는다 하여도 제가 복음으로 율법을 완성한다면 그것은 사랑이어야 할 것 입니다. 갑자기 새벽 기도에 출석부를 비치해서 제직들을 독려했던 것이 부끄러워 졌습니다. 목사인 내가 복음으로 율법을 완성하지 못하면서 어찌 제직들에게 율법의 완성을  요구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시작한 저의 목회를 육체로 마치려 하는 유혹을 일깨워 주시고자 그 동생 목사의 말을 듣게 하신 것 같습니다. 복음은 율법을 완성합니다. 그 율법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