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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은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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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961회 작성일Date 18-10-2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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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 있었던 가을 부흥사경회는 삼일 내내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강사 목사의 탁월한 성경해석과 자신의 진솔한 고백이 어우러지며 우리 모두는 한 사람의 성도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설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베냐민의 곡식 꾸러미에 은잔을 넣어 그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것이 드디어는 형제들을 살려내는 계기가 되게 하셨다는 은잔의 비유는 제 인생의 은잔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또 내 잔 곧 내 은잔을 그 소년의 자루 아구에 넣고 그 양식 값도 함께 넣으라’(창44:2).  약 이십여 년 전, 1995년 봄, 저는 직장에서 미국과 유럽 출장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기분 좋게 해외여행을 떠나듯이 준비하던 저에게 갑자기 망막 박리라는 은잔이 내 인생의 자루에 들어 왔습니다. 사십 대 중년의 나이에 실명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진단에 모든 것이 정지 되는 듯 했습니다. 그 후 눈 수술을 받고 두 눈을 가린 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경이 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해외출장도 다른 사람이 대신 가게 되었고 퇴원 후에도 내가 과연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되었습니다. 젊은 날, 공장장의 꿈을 안고 시작한 직장생활이 이렇게 끝나고 마는가 하는 점에서 나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항의 하곤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창조주라고 하지만 그래도 피조물을 이렇게 두 눈 가리고 침상에 처박아 놓을 수 있습니까?’ 망막박리 증상은 저의 인생을 억울하게 만들어 버린 베냐민의 은잔과 같았습니다. 그렇게 은잔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것이 이십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이 번 가을 부흥사경회를 들으며 그 은잔이 나를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음을 발견했습니다. 수술 후 시력이 떨어지면서 이제는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되었고 그 것은 또한 저를 만학도의 길로 이끌어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고 지금의 목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목사가 되었으므로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설교를 위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설교한 대로 살아야 하는 고민과 갈등이 나를 부서뜨리는 고난이 되어 내 믿음을 연단시키시고 드디어는 소망을 이루게 해주였습니다(롬5:3-4). 나의 인생길을 억울하게 바꾸어 버린 그 은잔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 이제는 제 인생의 꾸러미에 은잔을 넣어 주신 하나님께 항의가 아니라 감사를 드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 번 가을밤 우리 교회를 찾아 온 강사를 통해 우리 모두는 우리 인생의 은잔을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선물로 감사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겪은 고통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위로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은 과연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다루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인생에 찾아온 원치 않는 은잔이 있을지라도 그 은잔을 넣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여 억울한 인생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요즘 묵상하는 예레미야 말씀도 억울한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을 보는 듯합니다(렘27장). 사실 억울하기는 하나님 같이 억울하신 분도 없을 것입니다. 자기가 만드신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그 아들까지 잡아 죽이는 그런 자들을 사랑해야 하는 하나님의 억울함이야 말로 그 분의 은잔이리라 싶습니다. 사랑하셔서 스스로 은잔을 품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의 은잔 속에서 조금이나마 느꼈으면 싶습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