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언덕(黙想の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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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848회 작성일Date 25-10-11 09:44본문
올해 여름의 초입에 일본 순교지를 탐방하며 가슴 먹먹한 사연들을 들었을 때의 그 미묘한 느낌은 지금도 가슴 한 켠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아시아권에서 우리와 가장 비슷한 외모이지만 그 사이에 놓인 벽은 긴 세월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가깝지만 너무도 먼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그리스도인들의 비극적이고, 처참한 순교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접한 순간 일본 사람들이 한 순간에 전우애로 묶여진 동지로 다가왔습니다.
일본 에도 시대는 일본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잔혹한 탄압과 박해로 인해 수많은 순교자가 발생한 시대였습니다.
에도 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군사 독재를 뜻하는 막부를 열어 집권한 1603년부터 그 정권을 조정에 반환한 1867년까지의 봉건시대를 의미합니다.
미야기 현의 순교역사는 그 현의 센다이 번 지역에서 1716-1736년경에 있었던 제철소에서 일하던 그리스도인 120명이 처형된 사건이 마지막 순교로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이 마지막 순교가 마음에 와 닿은 것은 그 때 번성하던 여러 제철소에서 일하던 사람들로 구성된 여러 마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었는데
이 120명은 그리스도인들이 다 죽음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순교의 길로 나선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희생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처벌은 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참수형을 당하는 것이었음에도 기꺼이 그 길을 택한 것입니다.
죽임을 당하기 전 극심한 고문을 가하며 “신앙을 버리라! 버리라!”고 강요함에도 단 한 사람도 배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욱 마음을 아리게 하였습니다.
그 장소를 탐방하며 더욱 놀라웠던 것은 십자가와 참수형이 이루어지는 장소와 그 처형을 기다리는 장소가 산 중턱으로 50미터 정도 떨어져 있으나 굽어져 보이지는 않지만,
소리는 다 들리는 위치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처형을 위해 먼저 끌려간 사람들의 비명과 고통의 신음 소리가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의 귀에 생생하게 들려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때 이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이 오가고 있었을까요? 이렇게 처형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장소를 후대의 사람들이 붙인 이름인 ‘묵상의 언덕’ 또한 동일한 궁금증의 표현이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후대의 자손들이 순교자들의 묵상내용을 추정해 적어 놓았는데 아쉬운 오해가 느껴집니다: “처형 직전에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지,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해보면,
그 기리시탄(그리스도인)들의 무념(無念)과 분노의 목소리가 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마을의 후손들은 이미 믿음에서 완전히 떠났고, 믿음 없이 살아 온지 오래입니다.
그러기에 그 순교자들의 묵상을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들을 향한 ‘분노’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의 묵상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묻힌 무덤에 붙인 명칭을 보면 묵상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을 죽인 자들이 이 120명의 시신을 40명씩 세 그룹으로 나누어 합장하였고 그 이름이 ‘삼경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경총(三經塚)’은 ‘세 개의 불경을 묻은 무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무덤에 성경이 아니라, 웬 불경을 함께 묻었을까 의문이 들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부활하지 못하게 불경으로 막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이 순교자들이 죽음을 기다리며 묵상한 것이 분노가 아니라, 영생의 부활이었음이 명백해집니다.
십자가와 참수가 끝이 아닌 영원한 부활생명의 시작임을 묵상할 때 기꺼이 순교자의 길을 걷습니다.
김 재 구 목사
아시아권에서 우리와 가장 비슷한 외모이지만 그 사이에 놓인 벽은 긴 세월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가깝지만 너무도 먼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그리스도인들의 비극적이고, 처참한 순교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접한 순간 일본 사람들이 한 순간에 전우애로 묶여진 동지로 다가왔습니다.
일본 에도 시대는 일본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잔혹한 탄압과 박해로 인해 수많은 순교자가 발생한 시대였습니다.
에도 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군사 독재를 뜻하는 막부를 열어 집권한 1603년부터 그 정권을 조정에 반환한 1867년까지의 봉건시대를 의미합니다.
미야기 현의 순교역사는 그 현의 센다이 번 지역에서 1716-1736년경에 있었던 제철소에서 일하던 그리스도인 120명이 처형된 사건이 마지막 순교로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이 마지막 순교가 마음에 와 닿은 것은 그 때 번성하던 여러 제철소에서 일하던 사람들로 구성된 여러 마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었는데
이 120명은 그리스도인들이 다 죽음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순교의 길로 나선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희생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처벌은 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참수형을 당하는 것이었음에도 기꺼이 그 길을 택한 것입니다.
죽임을 당하기 전 극심한 고문을 가하며 “신앙을 버리라! 버리라!”고 강요함에도 단 한 사람도 배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욱 마음을 아리게 하였습니다.
그 장소를 탐방하며 더욱 놀라웠던 것은 십자가와 참수형이 이루어지는 장소와 그 처형을 기다리는 장소가 산 중턱으로 50미터 정도 떨어져 있으나 굽어져 보이지는 않지만,
소리는 다 들리는 위치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처형을 위해 먼저 끌려간 사람들의 비명과 고통의 신음 소리가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의 귀에 생생하게 들려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때 이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이 오가고 있었을까요? 이렇게 처형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장소를 후대의 사람들이 붙인 이름인 ‘묵상의 언덕’ 또한 동일한 궁금증의 표현이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후대의 자손들이 순교자들의 묵상내용을 추정해 적어 놓았는데 아쉬운 오해가 느껴집니다: “처형 직전에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지,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해보면,
그 기리시탄(그리스도인)들의 무념(無念)과 분노의 목소리가 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마을의 후손들은 이미 믿음에서 완전히 떠났고, 믿음 없이 살아 온지 오래입니다.
그러기에 그 순교자들의 묵상을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들을 향한 ‘분노’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의 묵상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묻힌 무덤에 붙인 명칭을 보면 묵상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을 죽인 자들이 이 120명의 시신을 40명씩 세 그룹으로 나누어 합장하였고 그 이름이 ‘삼경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경총(三經塚)’은 ‘세 개의 불경을 묻은 무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무덤에 성경이 아니라, 웬 불경을 함께 묻었을까 의문이 들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부활하지 못하게 불경으로 막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이 순교자들이 죽음을 기다리며 묵상한 것이 분노가 아니라, 영생의 부활이었음이 명백해집니다.
십자가와 참수가 끝이 아닌 영원한 부활생명의 시작임을 묵상할 때 기꺼이 순교자의 길을 걷습니다.
김 재 구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