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상급이란?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966회 작성일Date 25-06-07 10:39본문
우리는 어릴 적부터 평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이제는 잘하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잘못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벌을 주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의 삶에 있어서도 상과 벌이 있다는 것에 대해 그리 불편한 마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곳곳에서 하늘에서 받을 상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1-12)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눅 6:35)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상이 어떤 특정한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바로 신약의 서신들에 대거 등장하는 ‘관(면류관)’입니다(딤후 4:8; 약 1:12; 벧전 5:3-4; 계 2:10; 3:11).
대표적인 것이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마칠 때까지 믿음을 지킨 바울의 기대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고대의 운동경기를 생각해 보면 면류관은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란 점에서 그리스도인에게 면류관은 믿음의 승리자에게 주어질 영광이 분명합니다.
상이 곧 면류관이라는 점에서 그 면류관을 쓰고 할 것이 무엇인가는 계시록이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계 5:10; 11:15, 17; 20:4, 6; 22:5).
이전에는 이것이 액면 그대로 느껴지며 영원한 천국에서 뭔가 어깨가 으쓱해지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며, 왕으로 대단한 대접을 받는 것으로 상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점점 더 알아가며 상으로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왕 노릇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에 대한 깊은 숙고를 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 사람의 일을 생각하며, 큰 존재가 되려 하고, 가장 높은 곳을 바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사람들의 끝이 되어, 섬기는 자인 종이 되어야 한다는 역설을 거듭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저 하늘의 영원한 왕국에서는 면류관 쓰고, 왕 노릇 한다는 것이 어찌 액면 그대로이겠습니까?
계시록의 한 장면을 통해서 그 왕 노릇도 무엇인지가 드러납니다.
천상의 예배 장면에서 지상의 구약과 신약 교회의 대표자들인 24장로들이 주께 올려드리는 경배를 살펴보면 정확하게 천국의 이미지가 깊이 다가옵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계 4:10-11)
자기의 면류관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그 이유는 그 면류관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꺼이 가시 면류관을 쓰셨기에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서 쓰신 것이 우리를 위한 ‘가시 면류관’밖에 없으십니다(마 27:20; 막 15:17; 요 19:2, 5).
그럼에도 또 천국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우리를 섬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눅 12:37).
그러므로 우리의 하늘 상급인 왕 노릇은 왕이신 주님이 우리를 영원토록 섬기시는 것처럼 최고의 기쁨 가운데 우리 또한 영원히 서로를 섬기는 왕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보다 아름다운 곳은 결코 없습니다.
김 재 구 목사
그렇게 살다 보니 이제는 잘하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잘못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벌을 주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의 삶에 있어서도 상과 벌이 있다는 것에 대해 그리 불편한 마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곳곳에서 하늘에서 받을 상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1-12)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눅 6:35)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상이 어떤 특정한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바로 신약의 서신들에 대거 등장하는 ‘관(면류관)’입니다(딤후 4:8; 약 1:12; 벧전 5:3-4; 계 2:10; 3:11).
대표적인 것이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마칠 때까지 믿음을 지킨 바울의 기대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고대의 운동경기를 생각해 보면 면류관은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란 점에서 그리스도인에게 면류관은 믿음의 승리자에게 주어질 영광이 분명합니다.
상이 곧 면류관이라는 점에서 그 면류관을 쓰고 할 것이 무엇인가는 계시록이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계 5:10; 11:15, 17; 20:4, 6; 22:5).
이전에는 이것이 액면 그대로 느껴지며 영원한 천국에서 뭔가 어깨가 으쓱해지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며, 왕으로 대단한 대접을 받는 것으로 상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점점 더 알아가며 상으로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왕 노릇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에 대한 깊은 숙고를 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 사람의 일을 생각하며, 큰 존재가 되려 하고, 가장 높은 곳을 바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사람들의 끝이 되어, 섬기는 자인 종이 되어야 한다는 역설을 거듭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저 하늘의 영원한 왕국에서는 면류관 쓰고, 왕 노릇 한다는 것이 어찌 액면 그대로이겠습니까?
계시록의 한 장면을 통해서 그 왕 노릇도 무엇인지가 드러납니다.
천상의 예배 장면에서 지상의 구약과 신약 교회의 대표자들인 24장로들이 주께 올려드리는 경배를 살펴보면 정확하게 천국의 이미지가 깊이 다가옵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계 4:10-11)
자기의 면류관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그 이유는 그 면류관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꺼이 가시 면류관을 쓰셨기에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서 쓰신 것이 우리를 위한 ‘가시 면류관’밖에 없으십니다(마 27:20; 막 15:17; 요 19:2, 5).
그럼에도 또 천국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우리를 섬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눅 12:37).
그러므로 우리의 하늘 상급인 왕 노릇은 왕이신 주님이 우리를 영원토록 섬기시는 것처럼 최고의 기쁨 가운데 우리 또한 영원히 서로를 섬기는 왕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보다 아름다운 곳은 결코 없습니다.
김 재 구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