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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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307회 작성일Date 24-08-17 10:48본문
성공이란 단어를 들으면 종교인이든, 아니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부와 명예, 출세, 장수’라는 요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다 주는 요소들인가를 돌아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듯 합니다.
부가 다툼의 요인이 되기도 하고, 명예는 다른 이들의 환심을 사야하며,
출세는 언제든 내려와야 할 때가 있고 그리고 장수는 육체가 언제 처참한 나락에 떨어질지 모를 불안감을 주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이러한 성공을 추구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적인 삶에 대하여 진정한 영감을 준 시가 있습니다.
미국의 사상가 겸 시인이었던 랠프 월도 에머슨(1803~1882)의 '성공이란 무엇인가?(What is success?)' 라는 짧은 시입니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이 시를 음미하노라면 어떤 사람의 말처럼 성공이란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곳을 환하게 밝혀주는 일’이라는 짧은 정의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이 속에는 성공이 삶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계급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존재 그 자체라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마더 테레사 수녀와 한 사업가가 나눈 이야기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 사업가가 테레사 수녀에게 “수녀님의 사역은 딱히 성공적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도 캘커타의 빈민은 여전하고, 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도 그리 줄어든 것 같지 않고 고작해야 빈민굴의 고아 300명을 돌보고 있을 뿐이네요.
우리 사업가들은 수만 명의 고아를 후원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즉답을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성공하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충성하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성공을 업적이나 성취의 결과물로 인식하고, 평가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태도와 인격이라는 존재 자체를 바라보신다는 깨달음인 것입니다.
이는 마지막 날에 업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향한 존재의 성숙을 뜻하는 충성이 바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최고의 성공이라는 확신을 표한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도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각각의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다섯 달란트나 남겼구나. 정말 대단하다”고 하지 않으셨고, “두 달란트를 남겼구나. 참 잘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단지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였습니다. 종의 업적을 칭찬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착하고 충성됨’이라는 태도, 성품을 칭찬하십니다.
그리고 ‘착하고 충성됨’은 ‘예수님의 성품’(막 10:18; 계 3:14)이기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성공은 세상이 실패라고 조롱할지라도 그 성품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김 재 구 모가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다 주는 요소들인가를 돌아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듯 합니다.
부가 다툼의 요인이 되기도 하고, 명예는 다른 이들의 환심을 사야하며,
출세는 언제든 내려와야 할 때가 있고 그리고 장수는 육체가 언제 처참한 나락에 떨어질지 모를 불안감을 주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이러한 성공을 추구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적인 삶에 대하여 진정한 영감을 준 시가 있습니다.
미국의 사상가 겸 시인이었던 랠프 월도 에머슨(1803~1882)의 '성공이란 무엇인가?(What is success?)' 라는 짧은 시입니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이 시를 음미하노라면 어떤 사람의 말처럼 성공이란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곳을 환하게 밝혀주는 일’이라는 짧은 정의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이 속에는 성공이 삶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계급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존재 그 자체라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마더 테레사 수녀와 한 사업가가 나눈 이야기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 사업가가 테레사 수녀에게 “수녀님의 사역은 딱히 성공적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도 캘커타의 빈민은 여전하고, 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도 그리 줄어든 것 같지 않고 고작해야 빈민굴의 고아 300명을 돌보고 있을 뿐이네요.
우리 사업가들은 수만 명의 고아를 후원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즉답을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성공하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충성하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성공을 업적이나 성취의 결과물로 인식하고, 평가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태도와 인격이라는 존재 자체를 바라보신다는 깨달음인 것입니다.
이는 마지막 날에 업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향한 존재의 성숙을 뜻하는 충성이 바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최고의 성공이라는 확신을 표한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도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각각의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다섯 달란트나 남겼구나. 정말 대단하다”고 하지 않으셨고, “두 달란트를 남겼구나. 참 잘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단지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였습니다. 종의 업적을 칭찬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착하고 충성됨’이라는 태도, 성품을 칭찬하십니다.
그리고 ‘착하고 충성됨’은 ‘예수님의 성품’(막 10:18; 계 3:14)이기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성공은 세상이 실패라고 조롱할지라도 그 성품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김 재 구 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