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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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322회 작성일Date 24-07-05 17:15본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단수형 칭호는 신약성경에서 오직 예수님에게만 사용됩니다.
성도들은 주로 복수형 ‘하나님의 아들들’ 혹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불립니다.
이러한 차이는 하나님 아들들과 자녀들이 어떤 존재인가를 단수형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알 수 있게 합니다.
사복음서 중에서 특히 마가복음은 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명칭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우선 마가복음은 그 타이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막 1:1)는 문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유일합니다.
시작하자마자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을 읽어 가노라면 참 특이하고도 어이없는 사실 앞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은 대중 앞에서, 한 번은 세 제자들 앞에서 ‘너는(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확증을 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막 1:11; 9:7)
유대인 중에 어느 누구도 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고 입으로 고백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사역의 목표로 삼으셨던 유대인들은 오히려 대표자인 대제사장이 나서서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막 14:61)고 질문하고
예수님께서 “내가 그니라”(막 14:62)고 말씀하시자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몰아 죽음에 넘기고 맙니다.
이에 반하여 예수님을 대적하는 영적대적인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예수님의 능력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대면할 때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막 3:11; 5:7)라고 선포하며 그 앞에서 떱니다. 인간이 귀신들보다 못한 것일까요?
그런데 다행히도 마가복음 속에서 단 한 번 사람의 입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고백이 쏟아진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바로 이 한 번의 예가 마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는 주요한 이유를 파악할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유일한 고백은 마가복음의 결론부에 나타나며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던 한 이방인 백부장의 입을 통해서 비로소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 15:39)라는 고백이 울려 나온 것입니다.
삼년을 함께했던 제자들 중에서도 아니고, 이적과 기적을 경험하며 놀랐던 무리중의 한 사람도 아닌,
유대인의 역사와 예수님의 삶과 전혀 무관한 한 이방인의 눈에 비친 십자가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된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유대인에게는 걸림돌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웃음거리일 수밖에 없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아들로 입증되는 장소가 된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먼저 마가는 이 시종의 연결고리를 통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은 범죄자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선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걸으신 그 십자가의 길이 하나님의 자녀가 걸어야 할 영광의 길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방인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음을 주지시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를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모습은 물론 고난당하는 삶과 마침내 죽는 모습까지두요.
오늘도 예수님의 희생과 섬김의 길을 따라가는 한 사람을 통해 또 한 사람의 이방인이 하나님의 아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김 재 구 목사
성도들은 주로 복수형 ‘하나님의 아들들’ 혹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불립니다.
이러한 차이는 하나님 아들들과 자녀들이 어떤 존재인가를 단수형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알 수 있게 합니다.
사복음서 중에서 특히 마가복음은 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명칭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우선 마가복음은 그 타이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막 1:1)는 문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유일합니다.
시작하자마자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을 읽어 가노라면 참 특이하고도 어이없는 사실 앞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은 대중 앞에서, 한 번은 세 제자들 앞에서 ‘너는(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확증을 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막 1:11; 9:7)
유대인 중에 어느 누구도 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고 입으로 고백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사역의 목표로 삼으셨던 유대인들은 오히려 대표자인 대제사장이 나서서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막 14:61)고 질문하고
예수님께서 “내가 그니라”(막 14:62)고 말씀하시자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몰아 죽음에 넘기고 맙니다.
이에 반하여 예수님을 대적하는 영적대적인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예수님의 능력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대면할 때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막 3:11; 5:7)라고 선포하며 그 앞에서 떱니다. 인간이 귀신들보다 못한 것일까요?
그런데 다행히도 마가복음 속에서 단 한 번 사람의 입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고백이 쏟아진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바로 이 한 번의 예가 마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는 주요한 이유를 파악할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유일한 고백은 마가복음의 결론부에 나타나며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던 한 이방인 백부장의 입을 통해서 비로소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 15:39)라는 고백이 울려 나온 것입니다.
삼년을 함께했던 제자들 중에서도 아니고, 이적과 기적을 경험하며 놀랐던 무리중의 한 사람도 아닌,
유대인의 역사와 예수님의 삶과 전혀 무관한 한 이방인의 눈에 비친 십자가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된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유대인에게는 걸림돌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웃음거리일 수밖에 없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아들로 입증되는 장소가 된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먼저 마가는 이 시종의 연결고리를 통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은 범죄자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선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걸으신 그 십자가의 길이 하나님의 자녀가 걸어야 할 영광의 길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방인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음을 주지시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를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모습은 물론 고난당하는 삶과 마침내 죽는 모습까지두요.
오늘도 예수님의 희생과 섬김의 길을 따라가는 한 사람을 통해 또 한 사람의 이방인이 하나님의 아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