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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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712회 작성일Date 24-04-20 13:46본문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노라면 문득문득 위기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테러는 물론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삶을 불안하게 합니다.
특히 테러는 누구의 잘못인지 구별하기 힘든 보복으로 얼룩진 국경조차 없는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폭발음이 끊일 사이 없이 들려옵니다. 그런데 더욱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폭발의 대부분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깝지 않게 내던지는 자살 테러일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쉽게 흉내 낼 수조차 없는 신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폭발의 목표는 단 한 가지입니다.
할 수 있는 한 자신까지 포함하여 더 많은 사람을 살상 하는 것입니다. 더 많이 죽일수록 더 큰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폭발은 긍정적인 면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죽이는 폭발’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러한 ‘죽이는 폭발’이 아닌 ‘살리는 폭발’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은 우리들 또한 어떤 면에서는 폭발을 위해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의 테러리스트는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는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가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고 단언합니다.
여기서 ‘권능’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듀나미스’로 ‘힘, 권세, 능력’ 등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전체를 찬찬히 살펴볼 때 이 단어는 그 이상의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어떠한 것도 막을 수 없는 굉장한 폭발력입니다.
노벨이라는 사람이 1866년 발명한 엄청난 폭발물에 이 헬라어 ‘듀나미스’에서 유래된 ‘다이너마이트’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다이너마이트라는 폭발물을 통해서 ‘권능’으로 번역된 ‘듀나미스’라는 이 헬라어 단어의 위력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강한 폭발력이 내재되어 있음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폭발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폭파시키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스스로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던져 자폭하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자살 테러리스트와 유사하게 비쳐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의 테러리스트들과 극적으로 다른 점이 여럿 있습니다. 우선 그 동기에서 차이가 납니다.
테러리스트들의 동기가 분노와 절망, 혹은 잘못된 종교심과 애국심에서 기인한 부정적인 바탕에서 출발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새 생명을 부여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하심에 바탕을 둔 감사와 기쁨의 응답이라는 긍정적인 동기를 갖습니다.
그들은 적대시하는 사람이나, 단체, 나라를 상대로 자신들이 받은 상처에 대한 보복의 폭발을 자행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 어떤 나라도 예외 없이 나 자신이 서 있는 그 곳부터 땅 끝까지 이르러 우리가 값없이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폭발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과 우리의 확연히 차이점은 그들은 죽이는 폭발을 자행하지만 우리는 살리는 폭발을 일으킨다는 사실입니다.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폭발해야 한다는 그 목표는 같지만 그러나 그들은 죽임을 우리는 살림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반드시 쇠하여야겠지만 우리는 반드시 흥하여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미래를 지향하는 살리는 구원의 폭발을 준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김 재 구 목사
그 어느 때 보다도 테러는 물론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삶을 불안하게 합니다.
특히 테러는 누구의 잘못인지 구별하기 힘든 보복으로 얼룩진 국경조차 없는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폭발음이 끊일 사이 없이 들려옵니다. 그런데 더욱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폭발의 대부분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깝지 않게 내던지는 자살 테러일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쉽게 흉내 낼 수조차 없는 신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폭발의 목표는 단 한 가지입니다.
할 수 있는 한 자신까지 포함하여 더 많은 사람을 살상 하는 것입니다. 더 많이 죽일수록 더 큰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폭발은 긍정적인 면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죽이는 폭발’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러한 ‘죽이는 폭발’이 아닌 ‘살리는 폭발’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은 우리들 또한 어떤 면에서는 폭발을 위해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의 테러리스트는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는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가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고 단언합니다.
여기서 ‘권능’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듀나미스’로 ‘힘, 권세, 능력’ 등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전체를 찬찬히 살펴볼 때 이 단어는 그 이상의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어떠한 것도 막을 수 없는 굉장한 폭발력입니다.
노벨이라는 사람이 1866년 발명한 엄청난 폭발물에 이 헬라어 ‘듀나미스’에서 유래된 ‘다이너마이트’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다이너마이트라는 폭발물을 통해서 ‘권능’으로 번역된 ‘듀나미스’라는 이 헬라어 단어의 위력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강한 폭발력이 내재되어 있음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폭발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폭파시키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스스로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던져 자폭하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자살 테러리스트와 유사하게 비쳐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의 테러리스트들과 극적으로 다른 점이 여럿 있습니다. 우선 그 동기에서 차이가 납니다.
테러리스트들의 동기가 분노와 절망, 혹은 잘못된 종교심과 애국심에서 기인한 부정적인 바탕에서 출발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새 생명을 부여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하심에 바탕을 둔 감사와 기쁨의 응답이라는 긍정적인 동기를 갖습니다.
그들은 적대시하는 사람이나, 단체, 나라를 상대로 자신들이 받은 상처에 대한 보복의 폭발을 자행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 어떤 나라도 예외 없이 나 자신이 서 있는 그 곳부터 땅 끝까지 이르러 우리가 값없이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폭발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과 우리의 확연히 차이점은 그들은 죽이는 폭발을 자행하지만 우리는 살리는 폭발을 일으킨다는 사실입니다.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폭발해야 한다는 그 목표는 같지만 그러나 그들은 죽임을 우리는 살림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반드시 쇠하여야겠지만 우리는 반드시 흥하여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미래를 지향하는 살리는 구원의 폭발을 준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