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도 왕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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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885회 작성일Date 24-03-23 17:04본문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There is no royal road to learning.)”는 말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최고의 수학자이면서 기하학의 창시자인 유클리드(BC 325-265)의 말을 약간 변형한 것입니다.
당시 문명의 중심지였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하며 그 때의 왕인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게 기하학을 가르쳤는데
좀 더 쉽고 신속하게 기하학을 습득하고 싶었던 왕은 “기하학을 빨리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라고 물었고,
이에 대해 유클리드는 단호하게 “기하학에 왕도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합니다.
기하학이라는 복잡한 학문을 배우기 위해서는 왕이라 할지라도 일반 다른 사람들과 같은 만큼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의 말이 ‘기하학’이라는 특정 분야에서 ‘학문’이라는 모든 분야로 넓혀진 것입니다.
신앙의 길 위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소망을 하나 들라고 한다면 단연 말씀을 살아내는 실력을 최대한 빨리 함양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머리로는 아는데 그것이 삶이 되지 못하여 유혹에 무너지고, 실패하는 일들이 거듭되며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애닮은 질문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맥없이 무너지고 싶지 않다는 소망이며 좀 더 빨리 그 실력을 키우고 싶다는 선한 갈망의 표출인 것입니다.
그러나 학문에 왕도가 없듯이 신앙에도 왕도는 없습니다. \
구약과 신약성경 속에서 우리가 도착해야 할 지점은 동일합니다. 우리는 그곳을 향하여 지금도 나아가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말씀의 체화를 위해서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여 지켜 행하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라”는 결론까지 말씀해 주십니다.
‘주야’는 ‘낮이나, 밤이나’를 의미하기에 매 순간이 말씀과 함께하는 삶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와 동일하게 신약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그것이 가능할까요?”라는 질문이 나올 법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매 순간, 모든 상황과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과 판단과 결정의 기준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주야로 묵상하여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 이르기까지 실패와 시행착오들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대로 지켜 행하기까지
그 과정이 무려 40여년의 세월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여정을 75세에 출발하여 115세쯤에 이삭을 드리는 절대적 순종까지의 시간이 40여년이며,
그 과정 속에 무수한 실패와 시행착오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실패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셨고 오셔서 다시 말씀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때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그 길이 또한 우리 모두의 길입니다.
에디슨이 전구의 필라멘트를 발명하려고 90가지 재료로 실험을 했으나 성공치 못했을 때
한 제자가 90가지 재료를 써서 실패했다면 알맞은 재료가 없다는 것이니 포기하자고 말합니다.
그러자 에디슨은 “왜 자네는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90가지의 재료가 필라멘트의 소재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네”라고 말하며
연구를 거듭하여 2399번의 시행착오 끝에 2400번째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우리 또한 실패를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발견하는 기회로 삼고,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실패가 불순종의 멸망으로 끝나지 않고,
생명의 교훈이 되어 ‘주야로,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로 향하는 길이 계속될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
그리스-로마 시대의 최고의 수학자이면서 기하학의 창시자인 유클리드(BC 325-265)의 말을 약간 변형한 것입니다.
당시 문명의 중심지였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하며 그 때의 왕인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게 기하학을 가르쳤는데
좀 더 쉽고 신속하게 기하학을 습득하고 싶었던 왕은 “기하학을 빨리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라고 물었고,
이에 대해 유클리드는 단호하게 “기하학에 왕도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합니다.
기하학이라는 복잡한 학문을 배우기 위해서는 왕이라 할지라도 일반 다른 사람들과 같은 만큼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의 말이 ‘기하학’이라는 특정 분야에서 ‘학문’이라는 모든 분야로 넓혀진 것입니다.
신앙의 길 위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소망을 하나 들라고 한다면 단연 말씀을 살아내는 실력을 최대한 빨리 함양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머리로는 아는데 그것이 삶이 되지 못하여 유혹에 무너지고, 실패하는 일들이 거듭되며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애닮은 질문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맥없이 무너지고 싶지 않다는 소망이며 좀 더 빨리 그 실력을 키우고 싶다는 선한 갈망의 표출인 것입니다.
그러나 학문에 왕도가 없듯이 신앙에도 왕도는 없습니다. \
구약과 신약성경 속에서 우리가 도착해야 할 지점은 동일합니다. 우리는 그곳을 향하여 지금도 나아가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말씀의 체화를 위해서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여 지켜 행하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라”는 결론까지 말씀해 주십니다.
‘주야’는 ‘낮이나, 밤이나’를 의미하기에 매 순간이 말씀과 함께하는 삶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와 동일하게 신약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그것이 가능할까요?”라는 질문이 나올 법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매 순간, 모든 상황과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과 판단과 결정의 기준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주야로 묵상하여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 이르기까지 실패와 시행착오들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대로 지켜 행하기까지
그 과정이 무려 40여년의 세월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여정을 75세에 출발하여 115세쯤에 이삭을 드리는 절대적 순종까지의 시간이 40여년이며,
그 과정 속에 무수한 실패와 시행착오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실패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셨고 오셔서 다시 말씀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때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그 길이 또한 우리 모두의 길입니다.
에디슨이 전구의 필라멘트를 발명하려고 90가지 재료로 실험을 했으나 성공치 못했을 때
한 제자가 90가지 재료를 써서 실패했다면 알맞은 재료가 없다는 것이니 포기하자고 말합니다.
그러자 에디슨은 “왜 자네는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90가지의 재료가 필라멘트의 소재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네”라고 말하며
연구를 거듭하여 2399번의 시행착오 끝에 2400번째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우리 또한 실패를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발견하는 기회로 삼고,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실패가 불순종의 멸망으로 끝나지 않고,
생명의 교훈이 되어 ‘주야로,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로 향하는 길이 계속될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