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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의 꿈과 세상의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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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064회 작성일Date 20-09-27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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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나타난 애굽 왕 바로가 꾼 꿈은 신앙생활을 한지 좀 되신 분들이라면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두 가지 종류의 꿈을 꾸는데 그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한 내용의 꿈입니다. 첫 번째는 살지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가 나타나고, 그 다음은 애굽 땅에서도 본적 없을 정도로 약하고, 심히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나타나 처음 일곱 살진 소를 먹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줄기가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뒤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타나 그 가는 이삭이 좋은 일곱 이삭을 삼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바로에게 이 꿈을 주셨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만약 감옥에 갇혀 있는 요셉에게 이 꿈을 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의 소리는 결코 세상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감옥에서 아무리 칠년 풍년이 오고, 그 다음에 오는 칠년의 흉년이 애굽을 망하게 할 것이라고 외쳐대도 아무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칠 년이라는 풍년 속에 흥겨워서 어느 누구도 다가올 흉년은 예상조차 하지 않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를 통해서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바로는 애굽이라는 제국의 황제이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신으로까지 격상되어 있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인 바로에게 이 꿈을 주셨다는 것은 곧 일차적으로 세상이 경각심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며, 그 다음은 그 문제와 위기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들이 해결해 나감으로 세상이 구원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80-90년대를 거치며 풍요로움의 최고 정점을 향해서 달렸습니다. 세상은 그 풍요로움 속에서도 두려움을 가지고 그 풍요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그 해의 성장률을 계속해서 평가하고, 다음 해의 성장률은 물론 수 년 뒤의 상황까지 예측하며 스스로 미래를 준비하려 안간힘을 써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오히려 그 풍요 속에 파묻혀 세상을 향해 올바른 미래를 준비시키기 보다는 그 풍요 속에서 자족하고, 자만하며 지내왔던 시절이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코로나 시절이라는 모든 것이 얼어붙고, 마비되며, 멈추어버리는 이 시간 속에서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고, 외면당하며, 비난받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대안이라고 제시하는 것이 ‘현장 예배를 고수해야 생명이 산다’라는 슬로건을 내 걸고 오히려 세상에 걱정을 넘어서, 위협을 가하는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풍요로운 시절에 더욱 낮아져 십자가의 길을 준비하며 주님 가신 그 길을 마음에 새기고, 삶으로 체득하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세상이 교회를 향해 “모이지 말라”라고 소리칠 때 과감히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 세상 곳곳에 들어가 일상의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 속에 들어가 세워주신 자리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 두려워 떠는 세상을 향하여 생명의 길을 제시하는 대안 공동체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라도 분명 늦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코로나의 의미조차 모르고 헤매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 또한 분명하게 그 의미는 모를지라도 그 속에서도 진정한 생명의 길이 있고, 사람다움의 길이 있다는 것을 전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더욱 주님과 깊어지는 교제가 필요합니다. 매일의 살아있는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진다면 모이든, 흩어지든 우리는 흔들림 없이 세상 속에서 일상의 그리스도인으로 설 수 있으며, 주변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주의 향기를 전하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