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대포장에서 포장해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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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928회 작성일Date 20-11-06 14:39본문
우리 민족의 명절인 추석을 보내고 맞이하는 새로운 주간 아파트 앞에 쌓여 있는 재활용품 더미를 보며 탄식이 절로 쏟아져 나옵니다. 평상시의 두 배 정도 되는 분리 배출된 재활용품들이 성벽같이 쌓여 있는 모습은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우리의 삶을 공격해 들어올 흉기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것을 가중시키는 장본인 중의 한 명이 또한 저 자신이라는 점에서 하나님 앞에서 각성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호전시킬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해 봅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를 점진적으로 줄여갈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지를 궁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삶으로 적용하며 살아가는데 말씀이 쓰레기나 재활용품에는 적용이 안 되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재활용품을 잘 분리하여 배출하는 정도가 아니라, 재활용품이 줄어들고, 최선을 다해 안 생기는 삶으로 나가도록 해야 하는 소명이 있습니다. 먼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재활용품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재활용품의 80-90%가 포장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속에 있는 내용물을 감싸고, 보호하기 위해 사용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포장재의 다양함과 화려함이 심지어 속 알맹이보다 더한 느낌까지 들게 하는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포장재가 알맹이보다 부피가 더 나가는 경우들 또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만든 속담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포장이 그럴듯해야 알맹이 또한 격이 있어 보인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성향 자체가 해결되지 않는 한은 세상은 점점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결코 완화되고, 해결되는 길로 가지는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교회밖에는 없다는 것이 자명해집니다. 인간의 성향을 바꿀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는 고린도후서를 묵상하고 있는데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병폐와 씨름하는 내용입니다. 알맹이라고는 볼 것도 없는 거짓 사도들이 들어와 자신들의 화려한 경력을 과시하며, 현란한 언변으로 자신들을 과대포장해 고린도 성도들의 인간적인 성향을 자극하여 자신들의 잇속을 차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바울은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외모도, 언변도 보여줄 것이 전혀 없지만 한 가지 복음이라는 알맹이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의 속에 있는 생명주는 복음이라는 알맹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거짓 사도들의 화려한 포장을 바라보며 만족해합니다. 분명히 그들의 그 화려함이라는 껍질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고후 11:4)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이것은 그 때만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만약 지금 우리 현대의 교회들 또한 이와 같이 외면적인 화려함에 파묻혀 본질을 외면하고 살아간다면 세상은 계속해서 화려한 포장재들이 줄어들기 보다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그러나 낡아져 가는 겉사람은 질그릇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인 보배가 그 안에 자리잡는다면 우리는 겉포장에 연연해하지 않는 세상을 세워갈 것입니다. 결국 해답은 복음의 본질을 마음 중심에 새기는 것에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복음의 빛을 마음 중심에 품고 살아가면 포장하고, 꾸미며, 화려하게 보이려는 인간적인 성향까지 변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또 한 사람을 그 본질로 이끌어가면 비록 더딜지라도 세상은 변해갈 것입니다. 이 땅에 화려한 포장재를 줄일 수 있는 길은 바로 이 복음의 본질로 사람들을 이끌어 겉을 꾸미려는 인생의 성향을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비록 오랜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지만 근본의 변화가 최고의 길이며, 최단의 길입니다.
김재구 목사
김재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