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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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931회 작성일Date 21-06-12 16:01본문
작년 이맘때 봄쯤으로 생각됩니다. 어느덧 나무마다 물이 오르고 죽은 것만 같았던 가지들에서 꽃은 물론 연녹색 잎사귀들이 돋아나오는 때였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산책 겸, 운동 겸 숲길을 돌아서 집으로 가다가 쓰러진 나무와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쓰러져 뿌리가 거의 뽑혀 죽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나무는 여전히 살아서 그렇게 쓰러진 상태에서도 가지에서 잎이 돋아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록 일부분일지라도 뿌리가 땅속에 박혀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목회단상을 써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세파에 뿌리가 다 뽑힐 지경이 되었어도 비록 일부분일지라도 하나님 안에 뿌리내리고 있다면 소생의 기회가 있음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올봄의 끝자락에 그 동일한 나무 곁을 또 지나게 되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살펴보았더니 안타깝게도 더 이상 싹이 보이지 않고 메말라 죽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분명 뿌리의 일부분이 땅속에 묻혀 있는 것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남은 뿌리마저 썩은 상태가 되었음을 보았습니다. 작년에라도 구덩이를 파고 다시 심어주었다면 주변의 다른 나무들같이 생명력 있게 하늘을 향해 자라갈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나무를 보며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몇 가지 질문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딘가에 우리의 지체 중의 한 사람이 저렇게 세상 속에서 뿌리가 거의 다 뽑힐 지경으로 쓰러져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무관심과 소외 속에 끝내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무들은 쓰러져 있는 나무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위로할 수 있는 입을 주셨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주셨으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손과 발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라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며, 위로인지를 새삼 더 크게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전도서는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고 전합니다(전 4:9-10). 그리스도인은 결코 혼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홀로 있어 넘어지고 일으킬 자 없는 삶이 아니기에 우리에게는 든든한 응원군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도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좋다’라는 단어가 ‘선’을 뜻하는 히브리어 ‘토브’이기에 ‘좋지 아니하다’는 ‘선하지 않다’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홀로 거주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느냐, 안하느냐의 좁은 의미가 아니라, 사람이 다른 사람과 어우러져 살지 않으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공동체 속에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며 존재의 의미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혹시 홀로 떨어진 지체를 본다면 공동체로 초청해야 하며, 또한 자신이 홀로 동떨어져 있는 분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공동체로 나아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금 공동체 속에 함께 하고 있다면 그 공동체 속에서 사랑을 나누며 존재의 의미를 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는 교회 공동체는 소외된 영혼들이 들어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행복을 누리는 곳이 됨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을 누린 영혼들이 또한 그러한 길로 다른 소외된 영혼들을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순환이 질서 있게 이루어지는 것이 건강한 공동체입니다. 생명 있는 것은 자라는 것이 원칙이듯이 건강한 공동체 또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장의 시작은 소외되어 죽어가는 한 영혼을 세우는 것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