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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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088회 작성일Date 21-04-04 15:04본문
매해 3월 말쯤이면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노래가 있습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라는 가사를 흥얼거리게 하는 ‘벚꽃엔딩’이란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며 벚꽃축제가 무르익는 시점이면 그 열기를 북돋우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립니다. 코로나로 인해 벚꽃 축제들이 줄줄이 취소되며 예전 분위기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근처에 살고 있다는 이점으로 며칠 전 진해 여좌천 벚꽃 터널 길을 걸으며 활짝 핀 벚꽃의 화사함을 듬뿍 누려 보았습니다. 그 화사함이 더욱 감동적인 이유는 기나긴 겨울 동안 죽은 것 같이 메말라 있던 나무에서 봄날의 따스함과 더불어 어김없이 생명이 소생되어 꽃을 피운다는 사실입니다. 흡사 부활의 계절과 맞물려 우리 주님의 부활을 알리는 전령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벚꽃이 알려주는 또 한 가지 사실은 그렇게 활짝 핀 꽃송이들이 한 번의 휘몰아치는 세찬 비바람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시에 떨어져 사라져간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화사하게 자태를 뽐내는 벚꽃 터널을 거닐면서 그러한 엔딩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를 질문해봅니다. 이것은 곧 부활의 영광을 기념하고 감격해 하는 날에 종말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질문과 같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한 선지자가 바로 그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예레미야는 북이스라엘 멸망 후 남아있던 유다마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점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의 소명은 죄악으로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는 유다 백성들을 다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소명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두 가지 환상을 보여주시며 물으십니다. 첫 번째 무엇이 보이냐 물으시자 “살구나무(샤퀘드) 가지가 보인다”고 답합니다. 잘 보았다 하시고 “내가 내 말을 지켜(쇼퀘드) 그대로 이루려 한다”고 응답하십니다(렘 1:11-12). 여기서 언어의 유희가 보이는데 살구나무는 히브리어 ‘샤퀘드’로 ‘지켜본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쇼퀘드’와 동일한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구나무로 번역된 ‘샤퀘드’는 아몬드 나무로 이스라엘에서 겨울을 지내며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입니다. 그러다 보니 깨어서 지켜보는 ‘파수꾼’이라는 뜻까지 내포하고 있는 ‘샤퀘드’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예레미야에게 이 나무를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낱낱이 지켜보고 계시는 것을 상징하는 의미입니다. 아몬드 나무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그 모양이나 색깔 또한 벚꽃과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는 벚꽃축제 같지는 않아도 봄의 전령으로 아몬드 꽃이 화사하게 필 때 새 생명의 흥겨움으로 가득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그렇지 못합니다. 지켜보신다는 말과 더불어 그가 본 두 번째 환상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무엇이 보이냐고 물으시자, 예레미야는 끓는 가마가 보인다고 하며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다고 응답합니다(렘 1:13). 이는 곧 북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인 바벨론이 부글부글 끓는 물처럼 밀고 내려올 준비가 갖추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해마다 새 생명의 소생을 알리는 아몬드 꽃을 보며 흥겨운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지만 예레미야는 그 꽃이 화사하게 필 때마다 멸망의 시간표를 봅니다. 그의 소명의 세월 40여년 동안 아몬드 꽃은 늘 어김없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백성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꽃놀이는 가지만 하나님께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꽃놀이는 고사하고 예레미야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음이 결코 이상스럽지 않은 것은 오직 유일하게 그만이 아몬드 꽃을 보며 엔딩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부활하신 귀한 계절에 우리 모두 벚꽃을 보며 엔딩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주님과 걸어요.”
김 재구 목사
김 재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