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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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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944회 작성일Date 20-12-2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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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 위기의 순간에 나타났던 선지자들 중에 여로보암 2세 시절(기원전 790년경~750년경)에 활동했던 선지자 두 명이 있습니다. 바로 호세아와 아모스입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양극단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호세아는 품고 또 품으며 인내하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으로 호소하며 그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절박하게 외쳤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그러나 아모스는 흡사 칼날 위에 서 있는 것과 같은 치우치지 않는 정의와 공의를 외치며 돌이키라고 선포합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철저하게 패망할 것이라고 표독스럽게 외쳐댔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암 6:7). 지금 우리 시대라면 어떤 소리를 더 좋아할까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고멜이라는 부도덕한 여인을 끝까지 놓지 않고 돌아오라고 외치는 호세아일까요, 아니면 동일한 이스라엘을 향해 그따위로 살면 버림받고 말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아모스일까요? 이것은 흡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기반을 둔 선포와 바른 행함에 기반을 둔 선포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다 목적은 동일합니다. 타락하고 변질된 하나님의 백성 북이스라엘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호세아에게 정의와 공의에 대한 의식이 없었던 것이 아니며, 아모스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기초가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들이 그러한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눈을 주신 분은 분명 하나님이셨으며, 그들을 사용하여 필요한 부분을 전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을 것입니다. 거짓 예언자들을 제외한 모든 참 예언자들이 동일하듯이 이들의 선포에는 늘 입을 열 때마다 나타나는 문구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혹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라는 도입문구입니다. 예언자들은 결코 자신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입에 말씀을 담아주시고 그들은 그것을 전달하는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이미 이스라엘의 구원사를 열어갔던 모세라는 인물의 삶 속에서도 드러났던 것입니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 4:12). 하나님께서 세운 사람은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에 가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하라는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사람입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 빈부귀천 그리고 학력고저 등 그렇게도 다양한 백성들 전체에게 꼭 맞는 말이 어떤 것인지는 결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어떤 말을 하여야 그리도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백성들을 한 마음으로 바로세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사람도 결코 없습니다. 모세도 모르고, 호세아도 모르고, 아모스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은 세워주신 그 장소에서 각 사람의 마음 중심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입에 담아주시는 말씀과 해석하여 주시는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위로를 줄 자에게 위로를 주시고, 도전을 줄 자에게 도전을 주시며, 격려할 자를 격려하실 것이고, 질책할 자를 질책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전지하십니다. 동일한 말씀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이 모든 뜻을 이루어내실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자는 배려라는 명목으로 사람의 감정을 따라 다가가서도 안 되고, 섣부른 위로를 전하겠다고 직무유기를 해서도 안 됩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을 비워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할 뿐입니다. 살아계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 맞게 깨닫게 하시며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김재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