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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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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641회 작성일Date 21-10-0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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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신경 쓰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아니라 이해되는 부분이다.” 어느 시대든지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려고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익히 공감이 가는 말이라 여겨집니다. 차라리 이해가 안 된다면 핑계라도 댈 수 있지만 너무도 선명하게 이해되고, 살아야만 한다는 당위성까지 분명하게 주어져 있다면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죄사함을 받고 본래의 국적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각 나라마다 지켜야 하고, 살아야 할 법이 있듯이 하나님 나라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삶의 법이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씀을 살아내야 하는 장소가 자비도 공의도 다 무너져버린 세상 속이라는 사실이 삶을 버겁게 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생고에 덧붙여 사명의 짐까지 짊어지고 힘겨워하는 모습이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화상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이러한 짐을 지고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리고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기 때문이라”(마 11:28-30)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사명의 짐을 져야 한다는 말씀에 대해 “부담스럽다”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짐을 지는 것은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 쉼이다”라고 말씀하시니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요? 그 차이는 단 한 단어로 요약이 가능할 것입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누군가를 가슴 깊이 사랑해본 사람은 이미 체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한 남자가 한 여자를,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할 때 그리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수많은 역경을 참고 견디며 사랑하는 대상을 위하여 자신을 다 내어놓는 헌신을 기꺼이 합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얼마만큼의 짐을 지금까지 졌는지 그리고 앞으로 또 어느 만큼 더 져야 하는지에 대해 계산조차도 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 헌신이 요구하는 대가가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아야 하는 데까지 이를지라도 기꺼이 그리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라고 말씀 하실 때 사람이 짊어지고 있는 그 모든 짐을 십자가 사랑으로 대신 짊어지실 것을 미리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짐이 풀렸고, 모든 굴레와 속박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를 지켜 주시고, 세상 속에서 능히 살아갈 수 있게 하시려고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모질고, 거친 세상을 살아갈 능력이 부여된 것입니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세상의 거센 위력을 뜻하는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신데(시 93:4) 그 하나님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죄짐을 대신 지셨고, 지금은 삶과 사명의 짐을 같이 져주시려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니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으며, 버거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세상 속에서 주의 뜻을 행하며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으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라고 고백합니다(롬 8:36-37). 그리고 “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끊을 자 없다”(롬 8:39)고 단언합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들어와 “마음을 다하고 뜻(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삶”(신 6:5; 마 22:37)에 이르게 합니다. 이렇게 갚을 수 없는 사랑을 받은 자가 감사함으로 그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할 때 이해된 말씀은 짐이 아니라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