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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공정한 것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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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748회 작성일Date 21-07-2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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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리 큰 잘못을 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변명하고 까닭을 붙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속담이 될 정도라면 사람이 얼마나 많은 핑계와 구실을 대서라도 자신을 변호하고 싶어하는지를 알 수 있는 극단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는 잘못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며 이루지 못한 목표에 대해 변명거리를 찾고 싶은 경우에도 해당될 것입니다. 특히 그 실패가 자신은 물론이요, 다른 사람이나 단체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경우에는 더욱더 간절히 가장 좋은 핑계 거리를 찾으려 할 것입니다. 이는 신앙인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유혹과 시험이 일상이 되어 있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로서는 우리의 경건치 못한 삶에 대한 너무도 많은 핑계들을 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직장이, 가족이, 친구들이 그리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갈망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헌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정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히브리서 기자는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던지고 인내로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자고 권면합니다(히 12:1). 삶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상황을 이기고 승리한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히브리서 11장, 우리가 흔히 ‘믿음 장’이라고 정의 내리는 곳에 자랑스럽게 나열되어 있습니다. 아벨로부터 시작해서 구약의 대표적인 선지자들까지,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약속을 받은 그 당시 생존해 있는 증인들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 명단은 히브리서가 나열하는 증인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까지의 하나님의 증인들을 열거한다면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아니라 “모래알같이 빽빽하게 둘러싼 셀 수 없는 증인들로” 이 본문을 고쳐야만 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들을 이끌고 계시는 분은 다름 아닌 인류가 당해야 하는 최대한의 고난과 수모를 우리를 대신하여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 앞에서 때로 구실과 핑계가 송구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 한 좋은 예가 될 수 있는 시가 있습니다. 삶의 억울함에 파묻혀 “이것이 공정한 것인가요?”라고 항변한 어떤 무명 저자의 시입니다. 

하나님! 나의 하나님! 이것이 공정한 것인가요?
저의 전 생애는 거부당함뿐이었습니다. 이것이 공정한 것인가요?
상처와 고통뿐이었습니다. 이것이 공정한 것인가요?
외로움뿐이었습니다. 이것이 공정한 것인가요?
절망뿐이었습니다. 이것이 공정한 것인가요?
침체의 나락뿐이었습니다. 이것이 공정한 것인가요?
부정의와 배신뿐이었습니다. 이것이 공정한 것인가요?
치욕스러운 삶뿐이었습니다. 이것이 공정한 것인가요?
그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공정한 것이었느냐?

나를 바라보면 억울한 것 투성이지만, 주님을 바라보면 송구한 것 투성입니다. 우리의 삶이 핑계나 구실을 찾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증인들 앞에 서는 것도 아닌, 그 수많은 증인들 중의 한 명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삶이 이 땅에 핑계 없는 무덤을 만드는 유일한 길을 제공하리라 확신합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