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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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335회 작성일Date 22-07-02 16:25본문
영적인 존재들도 실수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볼 때 사탄을 생각하면 “그렇다”라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로 사람의 약점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데 귀재입니다(요 8:44; 계 12:9).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생이 그의 공격대상이며, 특히 의롭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존재일수록 더더욱 그의 주요 표적이 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욥을 들 수 있습니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는 욥을 정의하는 수식어는 신앙의 최고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탄은 욥의 의로움과 하나님 경외 속에서도 빌미를 잡으려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세계를 순수하게 바라볼 수 없는 그의 시선은 의롭게 살려고 하는 욥의 동기까지도 비딱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경외하며, 온전하게 살아가는 것이 속셈이 있지 않겠냐는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사탄의 논리로는 인생들이란 다 이 세상에서 편하고, 화려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하나님을 섬기는 척하지만 정작 그러한 것들이 사라지면 다 배신자가 될 것이 확실하다고 봅니다. 하나님도 극찬하는 욥도 그저 그런 인생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사탄의 손에 넘겨주십니다. 이 때 사탄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면 쾌재를 불렀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절대자인 하나님도 자신의 꾀에 넘어왔다고 비웃으며 또 한 인생을 철저하게 망가뜨려 그 입에서 하나님을 욕하는 소리가 터져 나올 기회를 잡은 그 기쁨에 미리 축포를 터뜨렸을 것입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무너져버린 인생들이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욥에 대해 허락하실 때 사탄은 절호의 기회가 왔다라고 여겼겠지만 사탄의 지혜를 초월하시는 하나님께서는 품으신 또 다른 뜻이 있으십니다. 사탄은 귀로 듣는 신앙의 단계에 있는 욥의 신앙을 철저하게 망가뜨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귀머거리 신앙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욥의 그 듣는 신앙을 두 눈을 뜨고 보는 신앙으로 전진시켜 가시려는 계획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사탄에게 욥에 관하여 먼저 운을 떼신 것도 바로 그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일들이 때로 세상이 말하는 불행으로 가득한 것이 될지라도 그 동일한 사건을 두고 하나님과 사탄은 이렇게도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사탄에게 내어맡기셨을 때 결코 사탄의 충동에 의한 한 순간의 객기도 아니셨고, 무작정도 아니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부주의한 신을 어찌 신뢰하며 일생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욥에게서 그 험난한 인생 역경 속에서 설사 입술에서 원망과 항변이 쏟아져 나올지라도 오직 하나님만이 이 모든 상황의 주권자이심을 믿고 그 하나님을 향하여 호소하기를 멈추지 않을 신앙의 씨를 이미 보셨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그 신앙의 씨마저 썩게 만들려고 작정하고 덤비지만, 하나님은 그 씨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싹을 틔우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그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사탄의 실수는 욥에 대한 그의 반론이 없었다면 차라리 욥을 옛 신앙의 단계에 머물게 만들 수는 있었을 터인데 그의 공격이 오히려 욥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더 깊은 단계로 이끄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뼈아픈 사탄의 실수입니다. 그리고 그 실수는 우리의 믿음의 단계를 정확하게 살피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께만 모든 의지를 두는 우리의 믿음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합동작전으로 인해 가능해집니다. 왜 하필 아브라함과 같은 족장시대의 배경을 가진 욥이란 인물로 사탄을 무너뜨리실까를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던 그 족장시절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이러한 믿음으로 결국 사탄의 계략이 실수로 끝나게 하길 소망하시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김 재 구 목사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