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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칼과 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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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431회 작성일Date 22-02-1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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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며 말이라는 것의 위력을 실감할 때가 많습니다. 말의 위력이 때로 긍정적으로 나타날 때가 있는가 하면 때로 부정적으로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그 차이점은 실로 극과 극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팝 가수이며, 작곡가이자, 연기자이기도 한 머라이어 캐리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경험한 말의 양극단에 대해 날카로운 비교를 제시해 줍니다. 그는 “수천 마디의 찬사를 듣다가도 한 마디의 비판이 날아오면 그 한 마디가 수천 마디의 찬사를 잠재워 버린다”고 고백합니다. 이와 유사하게 테네시 주 내슈빌의 그리스도장로교회 담임자로 사역하고 있는 스캇 솔즈 목사는 “칭찬과 인정은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지만 반면 모욕과 비판은 끈끈이처럼 들러붙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우리 입에서 나가는 말은 양극을 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흡사 사람의 혀가 칼이 될 수도 있고, 메스가 될 수도 있는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칼과 메스는 동일하게 날카로우며 무언가를 베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칼이 사람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고 생명의 위협을 가할 수 있는 흉기가 될 수 있다면, 의사의 손에 들려진 메스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됩니다.
 잠언서는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잠 12:18)고 전하며 동일한 혀가 죽이는 칼이 되기도 하고, 살리는 약이 될 수도 있다는 양극단을 말합니다.
사람의 혀는 이처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칼이 될 수도 있고, 메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말은 결코 혀의 작용이 아닙니다.
 사람의 몸에서 혀는 결코 스스로 생각하며 말하는 주체가 될 수가 없습니다. 단지 무언가의 대변인이 되어서 소리를 내는 구실을 할 뿐입니다.
그럼 혀가 칼이 되게도, 메스가 되게도 하는 그런 소리를 내게 만드는 주체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그 주체가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단언하십니다.
그 이유는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인데 사람의 마음에는 ‘악한 생각과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과 비방’이 뒤얽혀 있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마 15:11-20).
이처럼 혀는 단지 이러한 마음의 최고의 대변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혀를 제어할 수 있는 길이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음에 있는 것들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를 위해 마음수양을 합니다. 요즘 ‘빼기명상’이라는 방식도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버리고 싶은 것을 명상을 통해 마음에서 빼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겸손하지 못한 마음, 상대와 비교하는 마음, 끈기 없는 마음, 남의 시선에 신경 쓰는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나만 옳다는 마음, 부정적인 마음, 솔직하지 못한 마음
그리고 불안, 걱정, 이기심, 선입견, 자기합리화, 열등감, 게으름, 화, 짜증, 남탓, 집착, 욕심 등 삶에 끼어드는 101가지 마음의 잡념들을 다 버릴 수 있고,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다고 선전합니다.
어찌 어찌 억지로 이런 죄악된 생각들을 내리 눌러 없는 것처럼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완전한 것이 채워지지 않는 한은 늘 반복만이 있을 뿐입니다.
유일하면서 완전한 길은 시편 119편 11절처럼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라는 고백처럼 마음이 완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혀를 재갈 물리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증거합니다(약 1:26-27).
혀를 칼이 아니라, 메스가 되게 하는 가장 좋은 비결은 마음에 말씀이 새겨짐으로 말이 앞서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사랑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즉, 혀는 멈추고, 손에 메스를 쥐는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