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경쟁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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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396회 작성일Date 22-02-11 17:21본문
30대의 젊은 나이로 당당하게 내로라하는 당의 대표로 선출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 한 청년이 8년여의 정치 경험을 모아 집필한 책이 『공정한 경쟁』이란 제목으로 2019년에 출판되었습니다. 그는 서울 목동에서의 중학교 시절을 비록 무한경쟁이 바탕이 된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지만 그때의 성적 경쟁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자기중심적인 해석이라 여겨집니다. 경쟁대열에서 능히 그렇게 경쟁할 수 있도록 그에게 뒷받침이 되어준 수많은 요소들에 대해서는 눈이 닫혀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태어난 지역, 부모의 상황 그리고 자라온 배경이 다 다른데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란 것을 논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고, 부모의 사회, 경제적인 상황이 천양지차로 다릅니다. 태어났더니 부모의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금수저, 은수저, 흑수저라는 층으로 나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로 인해 자라가는 환경 또한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학업이나, 재능을 키울 수 있는가 하면, 재능에 관계없이 먹고사는 일에 매진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공정한 경쟁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공정한 것 같은 착각이 존재할 뿐입니다. 만약 공정한 경쟁이 하나님께서 뜻하신 것이라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그러한 모습을 한 연못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의 희생제사에 쓸 짐승이 통과하는 문인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는데 그 주변으로 수많은 병자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질병은 물론이고, 맹인, 다리저는 자, 혈기 마른 사람 그리고 심지어는 38년 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침상에 누워만 있는 환자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병자들이 그 주변에 모여있는 이유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간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는 전설따라 삼천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추측컨대 이 연못은 간헐적으로 개스가 내뿜어져 나오는 현상이 있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 이름이 히브리어 ‘베데스다’로 ‘집’을 뜻하는 ‘베트’와 ‘자비, 사랑’을 뜻하는 ‘헤세드’의 합성어로 ‘자비의 집’ 혹은 ‘사랑의 집’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답지 않게 자비와 사랑을 누리는 방식은 ‘무한경쟁’을 통과해야 합니다. 물이 동할 때 가장 먼저 그곳에 뛰어들어야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라는 평등한 원칙이 적용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처참합니다. 어떻게 맹인이, 다리 저는 자가, 혈기 말라 힘조차 쓸 수 없는 사람이 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맹인은 물이 움직이는 것도 볼 수 없고, 다리 저는 자는 달려갈 엄두도 낼 수 없으며, 혈기 말라 힘조차 쓸 수 없는 사람은 거동할 여력도 없으니 이 경쟁은 애초에 불공평합니다. 이름은 ‘베데스다’라는 사랑과 자비의 집이라고 하지만 그 실체는 세상의 방식에 바탕을 둔 증오와 비정한 무관심의 집이라 함이 합당할 것입니다. 그곳에서 38년 동안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것을 입증합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이 사람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탄식을 쏟아냅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요 5:7). 세상은 이렇게 도움이 없이는 생존조차 불가능하고, 결코 경쟁을 할 수 없는 처지의 사람까지도 다른 방법은 없고 이겨야 살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 병자 또한 그 원칙을 거부하지 않고 누군가 빨리 넣어 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세상을 향하여 진정한 사랑과 자비의 집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바로 그 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사랑과 돌봄이라는 십자가의 삶으로 이루어집니다.
김 재 구 목사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