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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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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258회 작성일Date 22-02-1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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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나름대로 해석을 해야만 하는 수많은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적게는 소모임에서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그 대화의 내용을 순간순간 해석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크게는 나라 사이의 외교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상대방 나라로부터 더 나은 위치에서 보다 더 높은 이익을 올리기 위한 국제적 해석이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선이나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어떻게 응해야 할지에 대해 해석해야 할 때가 있고 또한 자신에게 닥친 원인을 알 수 없는 고난에 대해서도 현명한 해석을 내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차후 행동이 달라지기에 바른 해석은 생명처럼 소중합니다. 2년여에 걸친 창세기 강해설교를 마감하며 마지막 내용인 요셉의 말이 계속해서 마음에 남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었으니 혹시라도 요셉이 자신들이 저지른 악에 대해 유보해 두었던 복수를 실행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형제들에게 한 위로의 말입니다. 그 말 속에는 자신에게 행해진 사람들의 악에 대하여 그리고 동일한 사건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해주신 선에 대하여 어떻게 조합하여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가 엿보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형님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쉬운성경; 창 50:19-20). “하나님을 대신하지 않겠다”는 말은 모든 것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가벼이 해석해 버리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상당히 무겁게 다가오는 선언입니다. 매사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 구체적인 예가 바로 “형님들의 악을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꾸셨다”는 말 속에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시선에 맞추기 위해서는 참으로 먼 시선이 필요합니다. 애굽에 보내진 목적이 무려 13년의 종살이, 감옥살이를 거쳐, 7년 풍년을 지나, 7년 흉년이 시작될 때에서야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무려 20년이 지난 이후에야 거기에 있는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기대하고 고대하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종살이, 감옥살이의 13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은 인간의 눈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며,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의 늪으로 원망과 불평, 원한 그리고 때로는 체념까지도 솟구쳐 오르게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요셉에게 그러한 사람의 시선만 있었다면 복수는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요셉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며 해석합니다. 어떻게 이런 시선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분명 시작부터 그렇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시고,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친밀한 교제가 그 믿음의 눈을 가능케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이것을 입증합니다. 애굽으로 팔려와 종살이를 할 때도,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 할 때도 먼저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형통하게 하셨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요셉은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에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라고 선언하며 유혹이 아닌,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을 택합니다. 그런 그를 만났을 때 바로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창 41:38)라고 탄복합니다. 매일 매일을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자는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마침내 하나님의 시선에 자신의 시선을 고정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 또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1)고 선언함으로 성령의 인도하심만이 하나님의 시선에 맞출 수 있는 길임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삶만이 육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기에 결국 죽이는 해석이 아니라 살리는 해석으로 우리를 이끌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