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내비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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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401회 작성일Date 21-12-08 13:40본문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발명된 기기 중에서 최고 중의 한 가지를 들라고 한다면 단연 길을 인도하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내비게이션이 없어도 천부적으로 길눈이 밝아 원하는 곳을 척척 찾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초보운전자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기기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요즘같이 자고 나면 새로운 길이 이곳저곳에서 생겨나는 시대에는 길을 찾아가는데 내비게이션의 도움은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운전을 하노라면 길을 잃을 때가 종종 있을 것입니다. 매일 오가는 출퇴근 길이야 큰 길이든, 골목길이든 가리지 않고 이미 몸에 밴 습관이 본능적으로 작동하지만, 낮 설은 길이나, 초행길은 다를 것입니다.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 조심스럽게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아차 하는 사이에 갈림길에서 다른 길로 접어들거나, 경로에 없던 골목길로 접어들어 낭패를 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비록 낮 설지만 그래도 몇 번 왕래한 길이라는 자신감에 호기롭게 내비게이션보다는 자신의 기억력을 믿고 덤비다 목적지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선명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먼저는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라는 소리이고, 이어서 “경로를 재설정합니다.”라는 소리입니다. 그리고는 곧이어 좌회전을 하든지, 우회전을 하든지 아니면 유턴을 하든지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더불어서 안타깝게도 목적지까지의 도착 시간이 쑥 늘어납니다. 그 반대의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이러한 운전과 내비게이션의 관계가 흡사 우리의 신앙생활과 성령님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내비게이션은 운전자에게 필수요소는 아니지만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성령님의 인도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입니다. 신앙인의 삶에서 문제의 발생은 대부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따라 움직일 때 발생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읽노라면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때야 하는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을 기다리고, 성령께서 임재하시고 그리고 성령의 인도 따라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다락방을 뛰쳐나와 사람들에게 나가 선포하는 것도(행 2:14), 빌립이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다가가 전도하는 것도(행 8:29),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선교할 장소를 지정해 주시는 것도(행 16:6) 모두 성령께서 인도하심을 따라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님의 인도를 제쳐두고 자신의 생각과 뜻을 따라 움직일 때 그리스도인도 육체의 소욕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는 일침을 가하는 것을 보면 성도들이 길을 잃은 것이 분명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경로를 이탈하였다”는 것과 반드시 “경로를 재설정하여야 한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이 말은 곧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잘못가던 길에서 돌이켜 다시 그리스도인이 달려가야 할 좁은 길 위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시간은 좀 걸릴 것이지만 다시 삶의 열매가 달라질 것입니다. 육신을 따라 살 때의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들이 맺혀지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처럼 경로를 이탈하였을 때에는 그 경종이 계속해서 울려오게 되어있습니다. 성령께서 결코 그대로 놔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라 양심에 화인 맞은 삶(딤전 4:1-2)이 아니라면 늘 유턴의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김 재 구 목사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