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전신갑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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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501회 작성일Date 25-12-07 14:36본문
에베소서를 여러 차례 읽고 묵상하며 전에 가져보지 못했던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전신갑주가 우리의 영적 생명을 지키고, 나아가 사탄의 왕국을 파괴하기 위한 필수요소라면
에베소서가 시작될 때 미리 알려주지 왜 마지막에 가서야 언급할까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5장까지 진행이 된 다음 마지막 6장에서도 끝에 가서야 전신갑주에 대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전신갑주는 그냥 입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이게 필수니 입으라고 던져준다고 해서 그것이 전신갑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5장에서는 전신갑주가 실제로 무엇이며, 어떻게 제 기능을 발휘하는지를 알려주고 나서야 마지막에 이것이 전신갑주다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전신갑주가 무엇인지를 미리 보게 해주는 구약의 한 사건이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갈 때의 일입니다.
소년 다윗이 골리앗과의 전투에 나가려 할 때 사울 왕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완전무장하고,
평생 군인으로 단련된 골리앗과의 전투에 나가려면 다윗의 상태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서 하는 것이 있지요.
시작에서 사울이 자신의 군복, 놋 투구, 갑옷, 칼을 다윗에게 입히고 무장시킵니다. 그 당시 군복, 놋 투구, 갑옷, 칼이라는 전신갑주는 최신병기입니다.
오직 사울 왕과 그 아들 요나단만 철제로 된 칼을 가지고 있을 때였기에 더욱 그렇습니다(삼상 13:22).
다윗이 완전무장하고 시험적으로 걸어보았으나 익숙치 않아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익숙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오히려 방해가 될 뿐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방식으로 갑니다. 그럼 다윗이 전신갑주를 버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나가는 것일까요? 아니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다윗의 전신갑주는 눈에 보이는 무장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골리앗을 향하여 “너는 칼과 단창으로 무장하고 나아오지만 나는 네가 모욕하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노라 …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은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5, 47)는 외침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사울과 다윗의 차이입니다. 사울은 분명 그 당시의 최신예 무기인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쟁터로 나가지 못합니다. 그에게 눈에 보이는 전신갑주는 있었지만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눈에 보이는 전신갑주는 없었지만 진정한 전신갑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 믿음이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자리 잡은 사람은 이미 전신갑주를 입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방패와 손방패가 되셔서 지키시고, 영광의 칼이 되셔서 대적을 공격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신 33:29).
그러므로 에베소서의 전신갑주는 바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엡 4:13).
이를 통해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는 삶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엡 4:14).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져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는 전신갑주를 입는 것입니다(엡 6:10-11).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고 신뢰함이 최고의 전신갑주인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
전신갑주가 우리의 영적 생명을 지키고, 나아가 사탄의 왕국을 파괴하기 위한 필수요소라면
에베소서가 시작될 때 미리 알려주지 왜 마지막에 가서야 언급할까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5장까지 진행이 된 다음 마지막 6장에서도 끝에 가서야 전신갑주에 대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전신갑주는 그냥 입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이게 필수니 입으라고 던져준다고 해서 그것이 전신갑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5장에서는 전신갑주가 실제로 무엇이며, 어떻게 제 기능을 발휘하는지를 알려주고 나서야 마지막에 이것이 전신갑주다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전신갑주가 무엇인지를 미리 보게 해주는 구약의 한 사건이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갈 때의 일입니다.
소년 다윗이 골리앗과의 전투에 나가려 할 때 사울 왕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완전무장하고,
평생 군인으로 단련된 골리앗과의 전투에 나가려면 다윗의 상태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서 하는 것이 있지요.
시작에서 사울이 자신의 군복, 놋 투구, 갑옷, 칼을 다윗에게 입히고 무장시킵니다. 그 당시 군복, 놋 투구, 갑옷, 칼이라는 전신갑주는 최신병기입니다.
오직 사울 왕과 그 아들 요나단만 철제로 된 칼을 가지고 있을 때였기에 더욱 그렇습니다(삼상 13:22).
다윗이 완전무장하고 시험적으로 걸어보았으나 익숙치 않아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익숙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오히려 방해가 될 뿐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방식으로 갑니다. 그럼 다윗이 전신갑주를 버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나가는 것일까요? 아니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다윗의 전신갑주는 눈에 보이는 무장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골리앗을 향하여 “너는 칼과 단창으로 무장하고 나아오지만 나는 네가 모욕하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노라 …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은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5, 47)는 외침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사울과 다윗의 차이입니다. 사울은 분명 그 당시의 최신예 무기인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쟁터로 나가지 못합니다. 그에게 눈에 보이는 전신갑주는 있었지만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눈에 보이는 전신갑주는 없었지만 진정한 전신갑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 믿음이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자리 잡은 사람은 이미 전신갑주를 입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방패와 손방패가 되셔서 지키시고, 영광의 칼이 되셔서 대적을 공격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신 33:29).
그러므로 에베소서의 전신갑주는 바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엡 4:13).
이를 통해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는 삶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엡 4:14).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져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는 전신갑주를 입는 것입니다(엡 6:10-11).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고 신뢰함이 최고의 전신갑주인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