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서 탄식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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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515회 작성일Date 25-11-22 13:19본문
“하나님이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은 은혜 중의 최고의 은혜이며, 축복 중의 최고의 축복임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은 성령으로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는 결코 속편하게 우리 안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한 번은 소그룹 모임 중에 학교 교사이신 집사님 한 분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왜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그냥 탄식도 아니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애끓는 탄식으로 우리 안에서 간구하실까요?”라는 질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답은 로마서에도 분명하게 언급된 것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연약함에는 육체적으로 ‘힘이 없고, 무력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의 연약함은 그보다는 영적으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나,
세상 유혹을 물리치는 면이나, 시험과 어려움을 견디어 내는 면에 있어서의 연약함을 의미합니다.
그런 때는 마땅한 기도가 아닌 우리의 제한된 시선과 감정만으로 기도하게 되니
그 시선과 감정의 골을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바꾸어 가시는 성령님의 간구가 얼마나 가슴절절 할까를 생각해 보면 그 탄식이 이해가 됩니다.
그 질문을 하셨던 집사님께서 어느 날 모임에서 나눔을 하실 때 학교에서 겪은 어떤 상황을 통해 성령님의 탄식이 무엇인지를 너무도 분명하게 깨달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상황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학생과 그 학생의 어머니가 참여한 학교 선도위원회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교장 선생님이 그 학생이 저질렀던 일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며 차후에 어떤 큰 불이익이 있을 수 있는지를 설명할 때였답니다.
그 학생은 무관심한 듯 들으려 하지도 않고, 다른 곳을 쳐다보고, 간간히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짓기도 하고,
소파에 푹 기대기도 하는 등 자세도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에 대한 인식은커녕,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교장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단 한 번도 끊지 않고, 진지하게 경청하며, 상황을 상세히 듣고,
낮은 자세로 받아들이며, 무슨 말씀을 하는지 잘 알기에 아무 변명도 못하고 눈물과 탄식으로 범벅된 애타는 심정으로 안타까워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선도위원들은 학생과 어머니를 동시에 바라보며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시는 어머니가 어떤 간절한 원함이 있는지를 이미 명확하게 눈치 채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참여하여 이 모든 상황을 보신 그 집사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친히 간구하신다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정확히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때로 상황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무관심한 듯이 살아가지만,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 어머니처럼 탄식과 눈물로 간구하신 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새로운 기회를 부여받는 축복을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회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는 자는 삶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
하나님이 함께하심은 성령으로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는 결코 속편하게 우리 안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한 번은 소그룹 모임 중에 학교 교사이신 집사님 한 분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왜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그냥 탄식도 아니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애끓는 탄식으로 우리 안에서 간구하실까요?”라는 질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답은 로마서에도 분명하게 언급된 것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연약함에는 육체적으로 ‘힘이 없고, 무력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의 연약함은 그보다는 영적으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나,
세상 유혹을 물리치는 면이나, 시험과 어려움을 견디어 내는 면에 있어서의 연약함을 의미합니다.
그런 때는 마땅한 기도가 아닌 우리의 제한된 시선과 감정만으로 기도하게 되니
그 시선과 감정의 골을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바꾸어 가시는 성령님의 간구가 얼마나 가슴절절 할까를 생각해 보면 그 탄식이 이해가 됩니다.
그 질문을 하셨던 집사님께서 어느 날 모임에서 나눔을 하실 때 학교에서 겪은 어떤 상황을 통해 성령님의 탄식이 무엇인지를 너무도 분명하게 깨달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상황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학생과 그 학생의 어머니가 참여한 학교 선도위원회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교장 선생님이 그 학생이 저질렀던 일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며 차후에 어떤 큰 불이익이 있을 수 있는지를 설명할 때였답니다.
그 학생은 무관심한 듯 들으려 하지도 않고, 다른 곳을 쳐다보고, 간간히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짓기도 하고,
소파에 푹 기대기도 하는 등 자세도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에 대한 인식은커녕,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교장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단 한 번도 끊지 않고, 진지하게 경청하며, 상황을 상세히 듣고,
낮은 자세로 받아들이며, 무슨 말씀을 하는지 잘 알기에 아무 변명도 못하고 눈물과 탄식으로 범벅된 애타는 심정으로 안타까워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선도위원들은 학생과 어머니를 동시에 바라보며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시는 어머니가 어떤 간절한 원함이 있는지를 이미 명확하게 눈치 채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참여하여 이 모든 상황을 보신 그 집사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친히 간구하신다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정확히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때로 상황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무관심한 듯이 살아가지만,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 어머니처럼 탄식과 눈물로 간구하신 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새로운 기회를 부여받는 축복을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회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는 자는 삶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