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에서 영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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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747회 작성일Date 25-11-08 11:22본문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의 건의로 ‘나사’(NASA)는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됩니다.
1977년 9월 5일 우주 탐사를 위해 지구를 떠난 보이저호가 1990년 2월 14일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인 해왕성을 벗어나려던 순간 카메라를 돌려 지구가 보이는 사진을 찍은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물은 까만 바탕에 빛을 발하는 작은 점 하나가 찍혀 있는 사진 한 장이었습니다.
그 사진은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세이건은 이 사진을 보고 영감을 받아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동일한 제목으로 책을 발간하게 됩니다.
그 책 속에 있는 인상 깊은 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저 점을 다시 보라. 저 점이 여기다. 저 점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 점이 우리다.
우리 인간이라는 종의 역사에 등장했던 모든 신성한 사람들과 천벌을 받은 사람들이 저 햇살에 떠있는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우리가 우주에서 대단히 특권적인 위치에 있다는 우리의 망상과 우리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자만심과 가식은 이 창백히 빛나는 점 때문에 그 정당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행성은 거대하게 둘러싼 우주의 어둠 속에 외롭게 떠 있는 작은 반점에 불과하다. …
우리의 작은 세상을 멀리서 찍은 이 사진보다 인간의 자만심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지구가 티끌이라면 그 위에 붙어 있는 70억의 인생은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참으로 보잘것없는 것이 인생임을 이보다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그림이 있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늘 잊고 사는 것이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위함인가라는 점입니다.
이 광활한 우주에 점 하나도 찍을 수 없는 티끌 중의 티끌인 인생을 위함인가,
아니면 이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위함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고 하십니다.
즉 우리의 창조목적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예배자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양을 구걸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찬양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백성이 될 때 우리의 삶이 가장 감격스럽고, 복되며, 영원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 명령 또한 우리의 행복을 위함입니다(신 10:13). 이 세상에 존재하는 티끌 같은 것을 찬양해 보아야 그 유효기간은 불과 8개월이고,
아무리 길어도 한평생을 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영생에 점 하나도 찍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의 한 호흡 같은 한평생입니다.
주께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고,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이기 때문입니다(시 90:4).
그러나 우리 하나님을 향한 예배는 영원하며, 그 감격과 기쁨 또한 영원합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입니다. 사람의 일은 잠시 잠깐 행복한 듯 하고, 편리한 듯 하지만
그 끝은 허무하게도 이 하잘것없는 점 위에서 끝나버리고 맙니다. 그것도 진정한 기쁨 없이 지속될 뿐입니다.
그러나 행복의 유효기간을 무한대로 해 주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해
이 광활한 우주에 점 하나도 찍을 수 없는 지구라는 티끌에서 영원으로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지금 이 순간에도 이곳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김 재 구 목사
1977년 9월 5일 우주 탐사를 위해 지구를 떠난 보이저호가 1990년 2월 14일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인 해왕성을 벗어나려던 순간 카메라를 돌려 지구가 보이는 사진을 찍은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물은 까만 바탕에 빛을 발하는 작은 점 하나가 찍혀 있는 사진 한 장이었습니다.
그 사진은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세이건은 이 사진을 보고 영감을 받아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동일한 제목으로 책을 발간하게 됩니다.
그 책 속에 있는 인상 깊은 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저 점을 다시 보라. 저 점이 여기다. 저 점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 점이 우리다.
우리 인간이라는 종의 역사에 등장했던 모든 신성한 사람들과 천벌을 받은 사람들이 저 햇살에 떠있는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우리가 우주에서 대단히 특권적인 위치에 있다는 우리의 망상과 우리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자만심과 가식은 이 창백히 빛나는 점 때문에 그 정당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행성은 거대하게 둘러싼 우주의 어둠 속에 외롭게 떠 있는 작은 반점에 불과하다. …
우리의 작은 세상을 멀리서 찍은 이 사진보다 인간의 자만심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지구가 티끌이라면 그 위에 붙어 있는 70억의 인생은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참으로 보잘것없는 것이 인생임을 이보다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그림이 있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늘 잊고 사는 것이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위함인가라는 점입니다.
이 광활한 우주에 점 하나도 찍을 수 없는 티끌 중의 티끌인 인생을 위함인가,
아니면 이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위함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고 하십니다.
즉 우리의 창조목적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예배자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양을 구걸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찬양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백성이 될 때 우리의 삶이 가장 감격스럽고, 복되며, 영원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 명령 또한 우리의 행복을 위함입니다(신 10:13). 이 세상에 존재하는 티끌 같은 것을 찬양해 보아야 그 유효기간은 불과 8개월이고,
아무리 길어도 한평생을 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영생에 점 하나도 찍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의 한 호흡 같은 한평생입니다.
주께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고,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이기 때문입니다(시 90:4).
그러나 우리 하나님을 향한 예배는 영원하며, 그 감격과 기쁨 또한 영원합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입니다. 사람의 일은 잠시 잠깐 행복한 듯 하고, 편리한 듯 하지만
그 끝은 허무하게도 이 하잘것없는 점 위에서 끝나버리고 맙니다. 그것도 진정한 기쁨 없이 지속될 뿐입니다.
그러나 행복의 유효기간을 무한대로 해 주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해
이 광활한 우주에 점 하나도 찍을 수 없는 지구라는 티끌에서 영원으로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지금 이 순간에도 이곳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김 재 구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