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 수장절인가? 초막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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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862회 작성일Date 25-10-02 12:24본문
올해도 변함없이 풍성한 한가위를 맞이합니다. 논밭에는 곡식들과 과일들이 주렁주렁 보기 좋게 익어가는 결실의 계절에 우리민족의 명절인 추석을 맞이합니다.
만약 우리 인생길에 이렇게 늘 풍성한 소출과 수입만이 주어진다면 우리 인생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를 생각해봅니다.
항상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믿음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갈까요?
아니면 풍성한 소출이라는 눈에 보이는 것에 의지하여 스스로의 힘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착각을 하며 살아갈까요?
어쩌면 이 둘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승리의 기쁨을, 때로는 실패의 좌절을 맛보는 삶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봅니다.
그러나 이것이 마냥 추측이 아닌 것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삶이 늘 이런 반복이었고,
지금 우리네 삶 또한 그리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서 사실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추석이라는 풍성한 절기를 맞이하며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이 있습니다.
풍성함에 초점을 맞춘 삶이 아니라, 바로 그 풍성함을 가능케 해 주시는 인자와 자비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시내 산에서 법을 주시는데
그 법속에는 이스라엘이 이러한 풍성함을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기념의 방식이 이스라엘이 초점을 맞추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그 기념은 추수감사의 축제로 우리의 추석과 동일한 이스라엘의 명절입니다.
바로 일곱째 달에 토지의 소산 거두기를 마치고 15일부터 21일까지 7일 동안 추수의 기쁨을 누리는 절기입니다. 풍성한
추수의 기쁨을 기념하는 시간이니 그 행복이 최고에 달하는 시간이요, 축제의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추수를 기념하는 명절의 이름이 의도적으로 두 가지로 주어집니다.
첫째 명칭은 ‘수장절’입니다: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출 23:16).
이 명칭은 말씀 그대로 밭에서 거둔 것을 저장한다는 의미를 그대로 살린 것입니다. 그 다음 명칭은 ‘초막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새 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레 23:34).
이 명칭은 절기 기간 내내 초막을 짓고 생활하는 방식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풍성한 추수를 하여 저장한다는 의미이니 수장절은 이해가 되는데, 왜 초막절일까요?
소출이 넘쳐나고, 삶을 풍요롭게 해줄 열매들이 가득한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일주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막에 거주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생활하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자신들을 어떻게 지키고 돌보셨는가를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레 23:42-43).
가나안 땅의 소출을 바라보며 광야시절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과 광야는 정 반대의 땅입니다. 거칠고, 황량하고 농사를 지을 수도, 길쌈을 할 수도 없는 곳,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은 곳이 광야였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아무것도 없는 곳이 모든 것이 공급되는 장소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풍성한 소출을 저장하는 수장절에 초막에서 지내며 광야를 기억케 하시는 것은 삶과 생명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시며,
눈에 보이는 풍성함이 아님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만 신뢰하는 백성으로 세우셔서 이 세상 물질에 흔들림 없이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도 이 풍성한 추석명절이 주님 채워주신 것에 감사하는 수장절이면서 또한 오직 모든 시선을 능력의 하나님께만 맞추는 초막절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김 재 구 목사
만약 우리 인생길에 이렇게 늘 풍성한 소출과 수입만이 주어진다면 우리 인생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를 생각해봅니다.
항상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믿음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갈까요?
아니면 풍성한 소출이라는 눈에 보이는 것에 의지하여 스스로의 힘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착각을 하며 살아갈까요?
어쩌면 이 둘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승리의 기쁨을, 때로는 실패의 좌절을 맛보는 삶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봅니다.
그러나 이것이 마냥 추측이 아닌 것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삶이 늘 이런 반복이었고,
지금 우리네 삶 또한 그리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서 사실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추석이라는 풍성한 절기를 맞이하며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이 있습니다.
풍성함에 초점을 맞춘 삶이 아니라, 바로 그 풍성함을 가능케 해 주시는 인자와 자비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시내 산에서 법을 주시는데
그 법속에는 이스라엘이 이러한 풍성함을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기념의 방식이 이스라엘이 초점을 맞추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그 기념은 추수감사의 축제로 우리의 추석과 동일한 이스라엘의 명절입니다.
바로 일곱째 달에 토지의 소산 거두기를 마치고 15일부터 21일까지 7일 동안 추수의 기쁨을 누리는 절기입니다. 풍성한
추수의 기쁨을 기념하는 시간이니 그 행복이 최고에 달하는 시간이요, 축제의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추수를 기념하는 명절의 이름이 의도적으로 두 가지로 주어집니다.
첫째 명칭은 ‘수장절’입니다: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출 23:16).
이 명칭은 말씀 그대로 밭에서 거둔 것을 저장한다는 의미를 그대로 살린 것입니다. 그 다음 명칭은 ‘초막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새 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레 23:34).
이 명칭은 절기 기간 내내 초막을 짓고 생활하는 방식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풍성한 추수를 하여 저장한다는 의미이니 수장절은 이해가 되는데, 왜 초막절일까요?
소출이 넘쳐나고, 삶을 풍요롭게 해줄 열매들이 가득한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일주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막에 거주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생활하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자신들을 어떻게 지키고 돌보셨는가를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레 23:42-43).
가나안 땅의 소출을 바라보며 광야시절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과 광야는 정 반대의 땅입니다. 거칠고, 황량하고 농사를 지을 수도, 길쌈을 할 수도 없는 곳,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은 곳이 광야였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아무것도 없는 곳이 모든 것이 공급되는 장소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풍성한 소출을 저장하는 수장절에 초막에서 지내며 광야를 기억케 하시는 것은 삶과 생명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시며,
눈에 보이는 풍성함이 아님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만 신뢰하는 백성으로 세우셔서 이 세상 물질에 흔들림 없이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도 이 풍성한 추석명절이 주님 채워주신 것에 감사하는 수장절이면서 또한 오직 모든 시선을 능력의 하나님께만 맞추는 초막절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김 재 구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