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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 놓는 행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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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현준 댓글 0건 조회Hit 1,688회 작성일Date 09-07-2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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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64장 첫 번째 가사인,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 . . . .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이면서도 가장 싫어하는 찬송이기도 합니다.
법정을 나온 아내는 집으로 들어서자 벽에 걸려있던 나무목 십자가를 부엌 바닥으로 내 동댕이 쳐버렸습니다. "무슨 하나님이 이래," 패소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십자가를 내 던진 것입니다.
열심히 정말 열심히 진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 놓은 체 1년을 그렇게 다투었는데, 결과는 이제 채권자로서의 권리를 합법적으로 부여받은 채권자들의 강제집행으로 돌아 올 일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동강이 나 버린 십자가를 집어 다시 봉합한 나는 원래의 자리에 거는 순간 눈물속에서 이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 . . . . . .
그로부터 집은 법원경매로, 심지어는 어린 두 아들의 공부방에 있던 TV, 등 등 까지도, . . . . . . .
주님! 당신이 지고가신 십자가의 고통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세상적 논리에선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채권자들이 다름 아닌 아내의 친 형제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 충격과 상처가 너무 컸던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치유 받을 것인가! 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메달려 "사랑으로, 또는 용서"로서 그들의 행위를 떠안고 가려 했지만 당신에 대한 믿음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고 보면, 바로 이런 것들이 인간의 한계 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머리에는 가시관에, 옆구리에는 창에, 양손과 발등에는 녹슨 못에 박히고도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라고 구한 마지막 그 말씀,! . . . . .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의 세속적 삶이래야 아무리 즐거워도 백년이 고작이거늘 그것마저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가는 마당에 무엇이 더 부족해 동생의 가정을 상대로 깊은 골을 패이게 한단 말입니까.!
물질적 노예를 양산하는 세속적 방향에 연민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 억울함에 상소를 하였지만 권력자들은 분명한 사실마저도 외면한 체 오히려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 청구권을 막기 위하여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워 재심의 기회까지 박탈해 버렸습니다. "그들은 그 것들을 법리라고 말하지요!"
권력자들이 자주 쓰는 법 원칙론에 비추어 볼 때, 행위가 있고 그 행위에 따른 결과가 기록을 통해 분명히 드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공존할 수 없는 "하나의 사실에 대하여," 법원과 검찰은 서로 상반된 결론을 내어 놓고도 다툼의 연장선에 있던 피의사실(위증)과 관련하여서는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이유로 한 각하 결정문을 통해 철저하게 법 본래의 취지를 유린하였습니다.
우리부부는 잘 참아내고 있습니다. 또 잘 견뎌내고 있습니다. 비록 한 건도 아닌 세건의 소송(두 건은 승소하였음)을 통해 얻은 것은 고사하고 잃은 것만 눈에 보이며 동시에 채무불이행자로 등재되고, 여전히 변제독촉에 시달리며 정신마저 피폐해져 지금 절대적 해체위기까지 내몰려 있지만 그렇다고 누구로부터 동정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내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행여 형제자매님들 중 관련하여 세상적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면 그 곳에 메달리지 말아 달라,"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 것이 이런 글을 올리게 된 진정한 취지인 것입니다.
아내의 패소는 세상적 판단이지 "하나님의 판단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은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아이는 끔찍한 운명을 맞았을지도 모르잖아요?
세속에 대한 욕심은 언제나 물질의 탐욕과 이성의 탐욕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내려놓고 보면 세상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기만으로 얼룩져 서로를 물고 물어뜯는 그사이에서 진실을 가려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인간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한 것입니다.
말들은 객관적 공정성을 이야기하지만 법관스스로가 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 세상지식 잣대로 올바른 판단은 내리기란 인간에게 내린 숙제일 수밖에 없고 하여 종종 誤審(오심)에 의한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 입니다.
유능한 의술의 날카로운 메스로도 도려낼 수 없는 골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당신 한분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집 잃고, 빚지고, 받을 돈도 못 받고 있지만서도 그래도 다리 뻗고 잘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진실을 하나님 당신은 알고 계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세상의 눈은 속일 수 있겠지만 하나님 그분의 눈은 속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전 교과서에서 본 국민교육현장의 이런 글귀가 문득 생각이 나는군요.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라는 말, 말입니다.
나는 지금 법원과 검찰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일어난 세상적 판단(판, 검사를 말함)을 세상 밖으로 끌고나와 좀 더 객관적인 방법으로 공정한 판단을 받기위해 한권의 책을 습작 중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저희들은 많은 세상 것을 잃었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이 때문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의 생명을 다시 돌려 주셨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3건의 소송으로 가장 절망적일 때 제가 운전하던 자동차가 뺑소니 운전자의 차량에 의해 무려 13m나 튕겨 나가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교통사고에도 불구하고 외상은커녕 신체 어느 곳 한군데도 긁힌 흔적 하나 없이 단지 왼쪽 4, 5번 갈비뼈가 살짝 실금이가는 가벼운 상처만으로 새로운 생명을 주셨다는 점에서" 세상적 오심에 의해 빼앗긴 재산이 무슨 가치가 있어 견주겠는지!" 이제 곧 탈고를 위해 그 끝을 내 달리고 있는 습작들이 이 땅위에 밝은 빛으로 전달되어 많은 사람들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서 "진정한 사랑과 용서를 통해  원칙"을 따지지 않고도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두 아들 중 큰 이들은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며, 작은 아들은 내년에 중학교에 간답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교회생활에 잘 적응하며 빗나가지 않고 있다는 점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보석이지요! 언젠가는 이 것 마저도 놓고 가겠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세상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랑/ 용서/ 원칙과의 사이에서의 다투는 방황은 무미건조한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의 모든 것은 나누는데 있음을 말씀을 통해 배웠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의 믿음을 선두로 이로 인해 고민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단 한 사람도 없기를 바라면서, 끝으로 저희 가족들을 주님의 곁으로 인도해 주신 강철오 형제님과 조금숙 자매님에게 정말 정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샬 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