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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땅을 밟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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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산교회 댓글 0건 조회Hit 1,860회 작성일Date 06-09-0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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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11일 학생선교단체인 부산지구JDM 에서는 2명의간사님, 9명의리더, 8명의새내기는 복음을 향한 열정을 가지고 두려움과 기대감을 가지고 중국 상해로 향하였다. 지금 편히 지내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까지가서 힘들게 복음을 전할수 있을지 걱정이컸다. 그리고 그다지 건강하지도 않은 내가 아파서 일정에 지정에 줄까봐 망설이기도 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빌 4:6~7 말씀 “아무것도 염려하지말고 오직 모든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의 큰 힘을 모르는 나였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기에 기도로 준비하고 기도로 나아갔다. 공항에서 나와 중국땅을 밟을때 엄청나게 더운 열기와 습도가 밀려 왔다. 이런 날씨에서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캠퍼스를 누리며 걸어다녀야 하다니...그날저녁 기도했다. ‘부디 힘든 상황에서도 영혼을위한 갈급함과 지체들간의 짜증이생기지 않기를...’

둘째, 셋째, 넷째날은 캠퍼스 전도에 힘썻다. 우리는 2008년 상해개척을 위해 밑거름을 다지기 위한 첫 번째 캠퍼스로 동제대학교를 목표로삼았다. 5개의 분교와 5만명이상의 학우들이 다니고 있는학교 이다. 1명의 선교사님과 3명의장,단기선교누나들, 그리고 우리를 통해 복음을 듣고 이번 상해개척에 참여한 슈웨이 라는 형이 도움을 받아 각조 4명씩 총4개의 조로 나뉘었고 다시 각조에서 2명씩 호흡을 맞춰 전도를 하였다. 중국인들에게 우리의 복음을 전하기는 쉽지 않았다. 오직 영어와 몸짓으로 교제를 나누고 복음에대해 전해야되었기 때문이다. 과반수의 학생들은 예수님에 대해 알고있었으나 부활한 사실이나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셨다던지 그 외 여러 기적들을 믿지않았고, 오직 공자나 맹자 부처처럼 한명의 좋은 의인정도로만 알고있었다. 그리고 대개 자신을 믿으며 달려나가는 이들이 였다. 또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이 아닌 몰라서 못믿을 수밖에 없는 이들을 만났을때에는 가슴도 많이 아팠다. 한국에서는 믿지 않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왜 이런 느낌을 가지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도 많이 해보았다. 또한 흥미있는 얘기를 나눌때는 웃다가 복음을 전하기위해 예수님을 언급하기만하면 인상을 찡그리며 듣기 거북해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우리는 캠퍼스 안에서 이들과 교제하고 복음을 한두마디 던지며 넷쨋날인 금요일에는 식당에서 즐겁게 저녁을 먹고 한국에서 준비해온 레크레이션, 간증, CCD, 스킷, 메시지를 기도로서 준비하여 그들에게 오직 한마음 예수님을 믿게해달라는 마음으로 임하였다. 내가 전도하고 복음을 전한 이들중에 영접자가 나왔을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오직 입에서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밖에는 되풀이 되지가 않았다. 또한 영접하지 못한 친구들을 보고는 안타까움이 밀려왔었다. 우리는 그렇게 초청파티를 마치고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헤어졌다. 영접한 친구들이나 성경공부에 관심이 있는친구들은 다시 정 선교사님께 연락처를 드려서 GBS를 할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사흘간 너무 힘들었기에 토요일에 영접한 중국친구들과 주장 이라는 물의도시에 방문하여 서로교제하고 좀더 깊이있게 복음을 전할계획이 였지만 서주에 있는 가정교회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계획을 변경하였다. 상해에서 서주까지 기차타고 8시간 이였다. 힘들었기에 조금은 쉴수 있으리라 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가정교회를 감으로써 그런 생각이 뭉개졌다. 가정교회를 가기위해서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것이 눈에 띄이지 않게하기 위해서 입을 꼭 다문 상태로 이동하였고 서주에서 다시 차를 타고 한시간 정도 더 깊숙이 들어간 곳은 농촌의 한 마을 이였다. 그 곳에서 모기한테 수십방씩 물리며 진정한 중국시골 음식을 맛보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5시에 기상하여 중국친구들과 Q.T예배를 하였다. 때마침 그곳에선 대학생들 집회가 있었기에 80여명의 중국친구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였다. 그들이 찬송할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중국에서는 가정교회나 예배가 금지 되어있기에 걸리면 최대 사형이였다. 그러나 그들은 온 힘을 다해 목숨을 바쳐가면서 우리 구주이신 예수님을 믿었고 순수하게 단 한분만을 보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순수하면서도 눈물로서 부르는 찬송은 어느 곳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하나님을 위해서 목소리를 내었다. 주일 예배를 할때 우리는 초청잔치때 준비해 온 몇가지를 보여줬었고, 특히 스킷을 할 때 거의 모든이들이 소리내며 울고있었다. 나 또한 그들 앞에서 이런공연을 할 수있다는 것에 대하여 너무나 기뻐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그곳에서 너무 많은 것을 느꼇다. 나를 비롯한 우리 한국의 기독교 인들은 너무 편하게 하나님을 믿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마져들었었다. 또한 저녁에는 ‘최 강’ 이라는 한 중국인 선생님을 만났는데 2000년도에 가정교회의 지도자라는 명분으로 감옥에서 3년이라는 세월동안 가족과 한번도 연락하지 못했고 현재까지도 가족들과는 단 한번도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분께 감옥속에서 어떠한 고문을 당하고 견딜수 있었는지에 관한 질문을 드렸지만 그 얘기에 대해서는 하시고 싶지않다며 회피하셨다. “내가 감옥속에서 견디는 것은 대단치 않은 일이였고 내가 그속에서의 얘기를 하면 나의 영광이 들어날 뿐이지 하나님의 영광은 들어나지 않습니다.” 라고 말씀 하셨다. 몇가지 질의 응답시간을 가지며 인내라는 것과 대학생으로서의 해야 할 일들을 가르쳐주셨다. 이 분은 중국에서 살아계신 역사 이셨으며 우리 나라에서도 복음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목사님들이 생각났다.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였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고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에 가기에는 너무 멀기에 짐을 벗어던지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나의 짐은 뭘까?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어떤거지? 그 모든 것을 버릴수 있는지 의문이 너무 많이 생겼다. 정말 성경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이토록 어렵고 아직 나에게는 준비가 되지도 않은 것 같았다. 너무나도 훌륭하신 분을 만났다. 육체적으로 정말 고되고 힘든 하루의 시간이 였지만 내가 여태 살아온 중에 가장 아름답고 잊지 못할 주일 이였다. 행복했다.

화요일과 수요일은 영접한 중국친구들과 함께 황산을 올랐다.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이런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드셨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21일 우리는 중국땅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였다. 10박 11일간 선교사님과 장,단기 선교누님들께 정말 감사드리고 또한 한국에서 나를 위해 중국땅을 위해 기도해주신 분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린다.무엇보다 이러한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가장 감사드린다. 정말 하루하루 힘든 일정이였고 바쁜 일정 이여서 집에 연락한통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돌아간다. 한시간은 너무도 길었지만 하루는 너무나도 짧았던 열흘간. 나는 전도하러 갔다가 오히려 전도를 당하고 돌아왔다. 이번 선교 여행을 통하여 다시 한번 나를 돌이켜보고 경건생활에 힘써야 겠고 또한 내 몸에 상처로 새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선교는 함께 하는것임을 실감하였고 나의 가장 위대한 중보자이신 예수님과 하나님께 영광을 바친다.

-대학 청년부 양휘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