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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기도 육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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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형도 댓글 3건 조회Hit 1,476회 작성일Date 18-12-03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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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태껏 기도란 구하는 것이고, 찾는 것이고, 두드리는 것이라는 식의 논리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기도를 하나님께 나의 필요를 열심히 구할 것을 아뢰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기도보다, 관계적이며 인격적인 만남의 기조보다는 내가 구할 것을 원하는 성취 식의 기도, 주문 식의 기도가 습관화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먼저 영이신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야 하며,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를 나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기도를 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나를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어야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여야 한다. 또 내가 필요할 때만 기도하는 습관을 고쳐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여야 한다. 기도는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만 잠잠히 바라며 송축하며 찬양하며 나아가야 한다.
 성령께서 함께하지 않는다면 기도는 요식적 형태의 모양새만 갖춘 것일 뿐 진정한 기도가 될 수 없다. 기도가 기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님의 간섭이 일어나야 하며 성령에 사로잡혀야 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이 기도한다고 착각하여 내가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상태에 머물면 영의 기도가 아니라 단순히 육의 기도가 될 수밖에 없다. 기도할 때 우리에게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성령 충만함을 입고 기도한다'이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겸손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고, 나의 원함을 구하기에 앞서 내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님께 나의 생각과 마음을 드리고 인도함을 받는 기도를 먼저 하여야 한다. 기도는 듣는 것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기도(말, 표현)로 먼저 시작한다. 10년 이상 영어 공부를 하고도 듣기 학습과  훈련은 하지 않고 읽기와 문법에 맞게 쓰기에 치중하다 보니 듣는 것도 말하기도 전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대화(기도)하려고 하기 때문에 기도가 어렵다. 그러므로 기도를 배우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먼저 그 말씀을 어떻게 이해를 하여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반응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태초에 말씀으로 시작되었으니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기도가 시작된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말하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믿음도 내가 먼저가 아니라 그저 주신 믿음인 것처럼 기도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셔야 기도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하기 전에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침묵하면서 잠잠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는 기도는 지치지 않는다. 기도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듣지 않기 때문이다. 내면의 소리를 듣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습관화 되어야 한다. 내면의 소리는 잘못될 가능이 있다. 잘못하면 말씀은 없이 마음에 들려지는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그러므로 올바른 기도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를 많이 읽고 듣고 담아야 한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하고 싶다면 성경을 충실히 읽고 공부하라.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터득하라.
 기도생활을 오래 하였음에도 좀처럼 성장이 없는 것은 기도할 때 듣지 않고 그냥 나의 말만 반복하였기 때문이다. 듣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듣고를 반복하여야 기도의 깊이가 깊어진다. 나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먼저 듣는가? 먼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얼마나 경험하면서 기도하는가? 고 되짚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죄악 된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날마다 죄를 짓고 살 수 밖에 없다. 운행을 하던 하지 않던 자동차에 먼지가 뽀얗게 쌓이듯 우리의 삶에도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죄가 쌓인다. 무엇보다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잊고 사는 죄이다.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는 기도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부분이다.
보험설계사가 사람을 상대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무작정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친하게 되어 가입에 응할 수 밖에 없다. 친밀한 사이가 아니면 오랫동안 끈질기게 구애를 하여야 응답이 온다. 기도도 계속 끈질기게 매달리다 보면 응답해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로 형성되면 구하지 않아도 먼저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기도는 드리는 시간이나 량에 의해 응답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관계에서 결정된다. 마음에도 없는 미사여구나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는 기도의 행위는 근본적인 관계까지 흐트려 놓는다. 단순한 기도는 관계를 더욱 견고하고 돈독하게 한다. 기도는 관계에서 힘을 얻는다. 우리에게 열심히 기도하면서도 또 걱정을 하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 아직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거나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복잡한 신앙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염려와 걱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반면 단순한 신앙은 걱정과 두려움을 이기게 한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신앙이 단순해진다. 그러나 하나님과 세상의 다른 것을 함께 바라보면 마음이 분열되어 복잡해진다. 기도가 복잡한 이유가 이런 걱정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은 오직 부모만 바라보고 산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걱정이 없다. 늘 웃음과 기쁨이 가득하다. 단순한 믿음은 오직 아버지만 바라보기 때문에 가능하며 단순한 믿음으로 단순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단순하게 기도하여 말로 채울 수 없는 깊은 마음을 담도록 하자. 중심으로 기도하는 영의 기도를 체득하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는 단순한 기도를 하도록 하자.
 그러므로 입술로 고백하는 기도만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기도여야 하며 어디에서 얼마나 기도하였는지를 상기하며 영성의 깊이인양 자랑하는 바리새인적인 사고는 시급히 버려야 한다. 세속을 떠나 기도한 것을 기도의 삶이라 할 수는 없다. 기도는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기도하는 사람은 삶 속에서 열매가 나타나야 하고 세속에서 기도한 대로 살아야 한다. 삶이 곧 기도여야 한다.
 기도하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일하신다.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일하시고, 내가 일하면 성령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신다.
 기도드릴 때 사단의 방해가 따라 사단은 기도의 적이다. 그러나 정작이 기도의 적은 사단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여러분은 식사 전에 감사기도를 합니다. 좋은 기도 습관이지요. 하지만 저는 연주회와 오페라를 보기 전에 기도하고, 연극과 팬터마임을 보기 전에 기도하며, 책을 펼치기 전에 기도합니다. 스케치, 그림 그리기, 수영, 펜싱, 권투, 산책, 춤추기 전에 기도하며, 펜을 잉크에 적시기 전에도 기도합니다." - G.K 체스턴

위의 글은 "내 인생을 바꾼 기도 습관"을 읽고 축약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