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김영숙 권사)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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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홍식 댓글 2건 조회Hit 1,943회 작성일Date 12-09-06 21:30본문
창원으로 어머니를 모신지 꼭 20년만에 창원 파티마 병원에서 소천하셨습니다.
9개월 전 암 선고를 받고, 노인은 암의 진전이 느리다는 말만 믿고 있었는데, 의외로 진행 속도가 빠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까지 통증 없게 지내시게 해 달라는 기도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방의 합심기도를 기꺼이 들어 주셨고, 9개월 내내 복부와 직장 부분에 커다란 암의 성장이 진행되고 있어도 어머니는 아무데도 아픈 곳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조만간 떠나실 것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임종을 지켜보며 숨을 거두실 때에는 20년간 같이 살면서, 못되게 굴었던 것, 불효했던 것이 생각나 울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천국에서 부활의 몸으로 갈아입고 기쁨으로 다시 만나겠지만, 이 땅에서의 이별의 아픔은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교회 지체들의 위로와 도움 덕분에 장례절차를 잘 치루었습니다.
교구 목사님을 비롯하여 여러 교역자님들과 지체들의 위로에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홍식 올림
9개월 전 암 선고를 받고, 노인은 암의 진전이 느리다는 말만 믿고 있었는데, 의외로 진행 속도가 빠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까지 통증 없게 지내시게 해 달라는 기도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방의 합심기도를 기꺼이 들어 주셨고, 9개월 내내 복부와 직장 부분에 커다란 암의 성장이 진행되고 있어도 어머니는 아무데도 아픈 곳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조만간 떠나실 것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임종을 지켜보며 숨을 거두실 때에는 20년간 같이 살면서, 못되게 굴었던 것, 불효했던 것이 생각나 울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천국에서 부활의 몸으로 갈아입고 기쁨으로 다시 만나겠지만, 이 땅에서의 이별의 아픔은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교회 지체들의 위로와 도움 덕분에 장례절차를 잘 치루었습니다.
교구 목사님을 비롯하여 여러 교역자님들과 지체들의 위로에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홍식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