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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파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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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길수 댓글 0건 조회Hit 1,304회 작성일Date 21-02-27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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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22~32
22.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바다 파출소>>
 지금도 "돌아온 탕자" 부분의 성경을 볼 때면 한 가지 사건이 떠오른다.
큰아이가 유치원에 다닐때 쯤 있었던 일인데, 바닷가에서 아이를 잃어 버렸다가 찾았던 일이다.  당시 우리가족이 살던 곳은 해수욕장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종종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한 나절을 보내고 오곤 했었다. 특히 그 해변은 만조 간조의 차이가 심하지 않고, 완만해서 어린아이들이 놀기에 그만 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화를 불러왔던것 같다. 아이가 물에 빠질 위험이 적다고 생각해서인지 약간의 방심을 하는 사이 큰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것이 었다. 느낌에 채 몇분이 되지 않았던 것 같아서 주위를 아무리 둘러 봐도 아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 었다. 슬슬 마음이 불안해 지면서 주위의 또래 아이들을 보면 모두 내 아들인 것처럼 보여 다가가 보면 아니었다. 거의가 반바지 수영복 차림에  모자 까지 쓰고 있으니 더 구별이 힘들었다. 아내와 나는 그제서야 불안한 마음이 번쩍 들어 그 넓은 백사장을 미친 듯이 찾아 다녔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았다. 별별 불안한 생각이 다 들었다.  거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찾아 다니느라 우리가 원래 있던 장소까지 헷갈리는 것이었다. 한 편으론 이녀석 찾기만 하면 혼을 따끔하게 내 주리라고 마음도 들고, 한편으론 제발 별일없기만을 기도하고 또 기도 했다. 찾기를 한 시간 가량 , 어디선가 방송이 흘러 나왔다. "OOO 어린이 보호자 분은 바다파출소로 와 주세요. 아이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문득 그 방송 소리가 귀에 들어와서 또다시 미친듯이 파출소로 달려 갔다.  그런데 그 곳에서 아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장난감 물통과 삽을 들고 웃고 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화도 났지만 그 보다는 너무 반가와서 아이를 꼭안고 한참 있었다.  아무 말이 안나왔다.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 밖엔 들지 않았다. 혼을 내 주기는 커녕 빨리 씻겨서 편안하게 해주고 맛있는것 먹이고 싶었다.  바다 파출소 직원은 방송을 그렇게 여러번 했는데 못들었느냐는 말을 했다. 못들었다.  왜 못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방송 소리보다는 내 눈으로 아이를 보고싶은 마음이 더 커서 그랬던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 후론 아이를 '분실' 하지 않고 지금까지 키우고 있다.

돌아온 탕자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기록한 복음서 이야기는 아마도 교회에서 가장 많이 설교되는 주제 중의 하나 일 것이다. 그것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내가 가진 사소한 물건도  잃었다가 찾으면 기쁜 법이다. 하물며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아들을 찾으면 얼마나 기쁠것인가? 는 두 말 할 필요도 없겠다. 그 기쁨은 아버지가 잘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아들이 내 앞에 돌아와서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돌아온 아들의 모습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다. 돌아온 것이 중요한 것이다. 더러워 졌으면 다시 씻기고 입히면 된다.  굶었으면 지금 부터라도 먹이면 된다. 일단은 내 앞에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부모가 망가져도 자식이 온전해 지면 부모는 무조건 기쁜 법이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기쁘게 생각하실지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각자가 생각해 보면 자신이 얼마나 추악하고 욕심많고 이기적이며 교만하며 가면을 쓴 죄인이란 것을 스스로는 안다.  남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하나님 만은 아신다.  그런데도 나를 벌하지 않으시고 돌아온 나를 기쁘게 받아 주셨다. 그리고 지금도 다시는 나를 '분실 '하지 않으시려고 말씀하시며 인도하시며 위로하고 계신다.  아이가 자라가며 그런 부모의 마음을 서서히 알아가듯 우리도 그런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야 하는 것이 오늘도 우리가 예배하고 기도하는 이유일 것이다.
백사장에서 잃어버렸었고 찾았던, 이제 27살이 된 아들을 보면  지금은 또다른 걱정이 생긴다.  그것은 이제 이 험한 세상에서 길을 잃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 곁에 꼭 붙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지금의 세상 문화는 아이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원심력 일변도로 인도하는 악한 문화가 많다.  자칫 한 눈을 팔다 보면 길을 잃기 쉽다. 부모된 자로서 지금도 아이들을 끊임 없이 지켜보고 말씀으로 양육을 해야할 책임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도 나에게 주신 자녀들을 위해 기도의 시간을 연다. 

바다파출소의 주된 임무는 잃어버린 아이들을 찾아주는 것이란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